굳모닝런던을 시작페이지로
BBC CBeebieslive LearningEnglish BBC school BBC local Congestion HSBC Daum Naver Google 핫메일 다국어성경 Amazon Audio Treasure 성경찾기 유투브 Eday 영국벼룩시장
광고
광고
광고

IT업계를 강타한 엑스톰의 탄생을 향해-1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4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4/11/24 [19:59]

IT업계를 강타한 엑스톰의 탄생을 향해-1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4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4/11/24 [19:59]

엑스톰 탄생의 환상적 승무원을 탑승 시키다.

 

사람들은 흔히들 “사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라고 한다. 왜 이런 말이 나왔을까? 그만큼 사업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많아서 쉽지 않다는 것이다. 1997년 5월 7일 이제 내 사업은 미지의 세계로 출항했다. 지금부터는 예상치 못한 험난한 파도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야만 한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도 피해나가야 한다. 두려움과 함께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려면 연료도 충분 해야 했고 식량과 물 뿐만 아니라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숙련된 선원들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게 준비된 창업을 위한 종자돈(Seed Money) 쓰기가 겁이 났다. 

 

그렇다고 마냥 고민만 할 수 없었다. 우선 나와 함께 선원들이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배부터 마련하기로 했다. 우리들의 승선인원에 적합한 크기와 용도에 알맞은 사무실부터 찾기 시작했다. 규모가 너무 커서는 연료가 금방 바닥 날 것 같아서 우선 작은 배가 필요했다. 그리고 사업의 주 무대가 대형전산실이 밀집된 지역이라서 강남과 송파지역을 택하기로 했다.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고객들의 아이디어와 조언이 절대적이었기에 그들을 만나기 위한 이동 시간은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렇게 많은 고심 끝에 최종적으로 구한 사무실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4거리 근처에 위치했다. 테헤란로 대로변에서 한블록 들어간 곳으로 주변의 지하철 이용도 용이한 장소였고 그 무엇보다도 근처에 금융기관의 전산실이 밀집된 곳이었다. 43평 규모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알맞은 공간이었다. 사무실 임대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는 마치 내 집을 사는 것만 같은 뿌듯함이 들었다.  

 

장은창업투자사로부터 입금된 3억원에서 우선 사무실 보증금 2천 만원을 지출하고 사무실 집기부터 하나씩 장만했다. 미리 마음속에 정했던 핵심직원도 한두 명씩 채용했다. 부족한 실탄이었지만 싸구려만 구입하지 않았다. 신품이 비싸면 중고를 사더라도 제 몫을 다하는데 지장이 없어야했다. 특히 개발용 장비였던 유닉스 서버는 더 그러했다.     

직원들과 내가 사용 할 사무실 집기 장만을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파는 기쁨은 정말이지 신이났다. 평소 나는 재래시장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취미가 있어서 그런지 아무리 발품을 팔더라고 피곤한 줄 몰랐다. 직원들 개인용 컴퓨터에 전화기 그리고 팩시밀리에 자잘한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사무용품조차도 새살림들이듯 신이 난 것이다.

 

종자돈(Seed Money)을 아껴 쓰려고 우선 시작한 사업은 미국산 소프트웨어 판매였다. 내가 계획한 소프트웨어 제품개발을 위해서는 다양한 제품에 대한 경험이 절실했고 또 남의 제품이라도 판매를 하면 수익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매출과 수익을 좀 더 늘리기 위해 하드 웨어 장비도 수입해서 판매했다. 하드웨어 장비는 소프트웨어 판매보다는 좀 더 수월했다. 사업초기에는 돈이 된다 싶으면 뭐든지 내다 팔아야만 했다. 내가 원래 계획했던 사무자동화 소프트웨어 제품에 대한 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미국의 앞선 선진기술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한 업체의 제품판매 경험이 절실했다. 그래서 내가 계획했던 사업과정에서 만나게 될 해당 분야의 업체들은 다각도로 접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당신네들의 제품을 한국에 많이 팔고 싶습니다.” 하면 대부분의 미국 업체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긴 그들의 제품을 팔아주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미국 회사는 무조건 대리점 계약을 체결해 주지 않았다. 사전에 제품판매에 필요한 기술지식을 이해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이수하는 조건과 철저한 판매계획서를 요구했다. 이는 내가 바라던 바였다. 대리점 교육을 통해서 그들 제품에 대한 기술 자료를 받을 수 있었고 내가 부족한 기술 분야에 대하여 과외 공부를 하게 된 셈이었다. 강사는 대부분이 엔지니어 출신들이었다. 엔지니어들은 거짓말을 잘못하는 특성이 있다. 대부분의 그들은 진솔했고 우리가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면 보일수록 최선을 다해서 많은 기술 지식을 전수했다.  

 

그러나 미국 제품에 대한 총판으로 선진기술을 배우며 판매 이윤으로 내가 꿈꾸는 분야에 개발비로 투자하려는 계획은 그리 녹록치는 않았다. 핵심기술에 대한 질문을 하면 여지없이,

“핵심기술은 왜 묻습니까? 대리점이 필요치 않는 내용입니다. 제품이나 더 판매하세요.” 했다.  그들이 이럴 때면 나는 항상 이렇게 대답했다.

“아, 네... 저희들이 좀 더 자세히 알아야 제품판매가 쉽지 않을까요? 우리가 잘 모르는데 어떻게 고객을 이해시키고 판매를 합니까? 당신네들 경쟁사는 영업 전략으로 기술교육을 강화하고 있던데 그렇게 패쇄적 이어야 무슨 장사를 하겠다는 겁니까?”

이렇게 답장을 보내면 대부분은 태도가 달라졌다. 그런데 미국의 패쇄적인 회사는 대부분이 보물이 가득했다. 내가 비록 서울대 같은 명문대학교를 나오지는 못했어도 굼벵이도 구르면 구를수록 요령이 생기듯, 그렇게 2~3년을 굴러보니 소프트웨어 산업에 대한 전반적인 동향과 함께 시장을 내다보는 안목이 확실히 달라졌다. 직장생활 당시 고객들이 그토록 목말라 원하는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구현해야 할지 조금씩 구체화 되어갈 수 있는 계기가 서서히 마련되기 시작한 것이다.

 

엑스톰 개발을 향해

 

내가 금융권을 첫 타켓으로 ‘종이 없는 사무실 구현’(Paperless Innonvation, BPR: 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을 전략사업으로 결심하게된 것은 직장생활의 경험으로 ‘비정형 데이터’ 처리가 향후 IT 업계에서 중요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시스템 도입에 대하여 가장 보수적이고 까다로운 최대 규모의 전산설비를 운용하는 금융권에서 검증을 받는다면 모든 산업 분야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장침투가 가장 까다로운 금융권을 첫 타켓으로 한국의 벤처기업이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제품개발에 대한 기본 청사진을 그릴 당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제품과 향후에 기술협력을 할 수 있는 미국과 캐나다 업체의 핵심기술 보유업체들을 찾기 시작했다.  내가 핵심기술을 보유한 업체 선정시 기준으로 삼는 잣대는 우선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와 아직 상장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능한 시장 점유율이 많은 곳을 택했다. 내가 공부를 못해도 친구들이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으면 배울게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몇의 업체들을 리스트 업 후에는 우선 메일부터 보냈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은 콧대도 높았고 나를 이상하게도 생각했다. 아직 제품도 못 만들었으면서 왜 자신들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미국에 나갈 일이 있으면 사전 약속 없이도 그들을 찾아가서 기어코 만났다.

그러다보니 미국 출장도 빈번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더듬이 수준의 미국 말하기였다. 미주 지역 영업담당 임원과 출장 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나 혼자 갈 때는 처음 한동안은 무척이나 답답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전자수첩뿐.

 

처음에는 내 더듬이 수준의 발음을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걱정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잘도 알아들었다. 그렇게 자주 얼굴을 보면서 조금씩 편해지니까 나중에는 틀렸던 문법도 바로잡아 주고 발음교정은 물론 미국인들에 대한 습성과 함께 비즈니스에 대한 요령도 가르쳐 주었다. 그러더니 어떤 친구는 미국인을 설득하는 요령까지도 알려주었다. 정말이지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더니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문은 두드려야 열리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절대 열리지 않는다.

 

미국산 제품을 판매하면서 그들의 마켓팅 전략을 이해하고 숙지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핵심이 되는 원천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중에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사업 분야에 대한 핵심기술을 보유한 미국인 엔지니어를 내 배에 승선시키는 것이다.

 

그러던 중 럭키하게도 미국 IBM의 비즈니스파트너인 블루버드시스템(Bluebird System)과 한국 총판계약을 하면서 핵심 엔지니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미국 IBM의 운영체제(OS: Operating System) 분야와 데이터베이스 기술연구소에서 오랜 세월 근무했던 최고의 정예 멤버들이었는데 회사의 경영진과의 의견차이로 회사를 그만둘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내 배에 승선시켜야겠다고 작심을 하였다. 내가 구현하고자 했던 분야의 기초가 되는 모든 핵심기술을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IT 분야의 기술동향과 향후 어떤 제품을 어떻게 준비해서 틈새 시장(Niche marketing)을 공략하면 사업이 성공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미팅을 하면서 평소 구상해왔던 신제품에 대한 기능과 성능 그리고 기술발전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그리고 최종 사용자인 고객들의 요구사항은 무엇인지도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는 미국 현지에 기술연구소를 별도의 법인으로 설립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그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그들에게 환상적인 조건을 던졌다. “나는 당신들을 내 배에 승선시키고 싶습니다. 그리고 주요 경영진의 대우로서 스톡옵션 또한 최대한 많이 주겠습니다. 함께 노력해서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됩시다.” 그러자 그들은 얼굴에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과 마라톤 회의를 거듭한 끝에 결국에는 내 배에 전원 승선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San Diego)에 자 본금 백만 달러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그것도 미국 소프트웨어 최대 산업지역인 샌디에고(San Diego)에다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정말이지 꿈에 그리던 미국의 선진 원천기술에 대하여 핵심인력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무리였다. 미국 연구진이 가지고 있는 능력 중 최고의 장점은 시스템 설계분야였다. 미국 연구진은 내가 시스템 구현시 고려해야 할 핵심이야기를 하면 그 이상의 경우를 항상 준비했다. 그 중 한 친구는 수학의 귀재였다. 특히 확률과 통계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국 연구진이 준비되었다고 해서 세계 최고의 제품을 단시간에 아무런 시행착오 없이 개발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사람마다 능력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선장인 내 역할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일을 줄 때 핵심기술 인력들에게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능력과 특성에 맞도록 분배를 잘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특히나 나에게는 연료와 식량이 넉넉하지 않았고, 뿐만 아니라 선원도 턱 없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무조건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한정된 자원으로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일당백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래머가 절실했다. 그래서 인도의 박사급 프로그래머를 핵심인력으로 채용하게 되었다. 주위에서는 한국의 프로그래머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조언했지만 나는 인도의 박사급 프로그래머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컴퓨터 프로그램은 확률과 통계의 함수 값으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가 인도이듯 고대 수학의 발상지도 인도이다. 뿐만 아니라 인도의 과학 기술교육은  대단했다. 21세기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 ‘0’과 1~9까지의 ‘수’는 인도 ‘베다 수학’에서 발명되었다. 이 ‘수’가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졌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0진법의 ‘수’를 아라비아 숫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인도의 '부다야나'라는 수학자는 유럽보다 600년 앞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설명했고, 대수학과 삼각함수, 미적분 등은 인도에서 11세기부터 강의되었다고 한다.

 

인도 ‘베다수학’의 기본 원리는 수의 형태와 특성을 살펴서 가장 빠르고 효율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역시 내 예상은 적중했다. 그들의 프로그램 생산성은 말이 필요 없을 만큼 정말 대단했다. 일당백이 무엇인지를 결과물로 명백히 증명해 주었는데 우리나라 프로그래머에 비해서 최소 서내 배 이상의 생산성을 보여 주었다. 그들의 빠른 프로그램 구현능력도 대단했지만 완성된 프로그램을 작동시켰을 때 단 한 번의 오류도 없이 완벽하게 실행되었다. 결국 그들의 성실함과 빠른 프로그램 구현으로 당초 예상했던 제품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키는 계기가 되어 제품을 보다 일찍 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제품구현시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은 고객이 사용하기 편하고 화면도 깔끔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두고 IT 업계에서는 ‘User Frindly’ 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미국 직원과 인도 직원, 한국직원 등 모두 3개 국가의 직원들이 제품을 함께 개발하면서 각 나라마다의 특유의 문화도 크게 한몫했다. 예를 들자면 미국 물건들을 보면 보기에도 튼튼해 보이지만 투박한 면이 있다. 이런 부분은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세련되고 예쁘게 디자인하는 능력이 탁 월했다. 이렇게 환상의 드림팀이 꾸려졌다. 선진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 직원들에 한정된 식량과 연료를 절감하고 제품개발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 주는 인도 직원들 그리고 고객의 입맛을 만족시켜줄 한국 직원들에 최고의 정예멤버가 승선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최고의 드림팀과 함께 내가 그토록 꿈꾸던 ‘비정형데이터’ 분야의 제품개발에 착수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에 두 차례씩 미국을 뻔질나게 드나들기 시작했다. 주로 미국 출장은 주말에 다녀왔다. 당시에는 내 몸이 두 개, 세 개라도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목요일까지 기존업무를 챙기고 금요일에는 미국으로 날아가서 연구개발 관련된 업무를 챙기고 월요일에  귀국하곤 했다.

"Ladies And Gentlemen, Please Fasten Your Seat Belts" 스튜어디스가 로스앤젤리스 공항에 다왔다면서 착륙준비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미국 출장의 시차적응을 위해서 비행시간 반 이상인 5시간 넘게 쿨쿨 자곤했다. 잠이 안올때는 승무원에게 위스키를 한 컵 달라고 해서  원샷에 털어 넣고 담요을 뒤집어 쓰면 금새 골아 떨어졌다. 나는 알콜에 약한 편인데 술만 마시면 졸리는 특이체질이다. 나의 미국 출장길은 항상 그랬듯이 가방은 가볍고 간단했다. 기내에서 휴대가 가능한 가방에 빈공간없이 촘촘하게 잘만 챙기면 한 2주 정도도 문제없었다. SanDiego 연구소가 있어서 미국 출장길은 작은 집에 가는 것만 같았다.

 

이번 출장에서는 고객들이 요구하는 기능중에서 무엇은 수용하고 어떤 것은 뺄지 결정을 해야 한다. 고객의 요구 조건을 다 들어 주면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우리가 할 일이 아닌 잡다한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긴다. 물론 시스템 자체도 무겁게 되고 안정성도 떨어지게 되는 요인이 다.  그래서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중에는 뜨거운 감자가 항상 있기 마련이다.

렌트카 회사가 무료로 태워주는 셔틀 버스를 타고 AVIS에 도착 후 이번에는 뭘 타고 다닐까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다. 승용차도 타보고 SUV도 타고 미제차도 타고 일제차에 유럽차도 타보고 다양한 차를 타곤했다. 각 회사마다 자동차 만드는 솜씨가 다르기에 나는 내 기준이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느끼고 싶었다. 나 역시 경쟁력있는 독특한 제품을 만들어 내야 할 입장이기 때문이다. 내가 IT 업계에서 일한다고 해서 IT 업계에서 경험하는 느낌만으로 제품을 만들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에서 느끼는 경험을 제품에 반영하고 싶었다.

 

로스앤젤리스에서 SanDiego 연구소 까지 대략 두 시간 남짓 걸렸다. 101번 프리웨이 길은 미국 서부 바닷가를 달리는 길이어서 드라이브 코스로는 최고였다. 미국은 렌트카에 연료를 가득 채워서 주기 때문에 주유소부터 가는 해프닝은 없었다. FM 라디오에서 주변 교통상황을 이야기 하는 방송을 들으면 이곳이 미국 땅이구나 실감이 났다. 그런데 한국 방송이 나오는 게 아닌가? 처음에는 미국에서 듣는 한국 방송이 무척이나 신기했다. 정말이지 한국인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캘리포니아는 자외선이 강해서 썬글래스가 없으면 눈 뜨고 다니기도 쉽지 않았다. 조그만 체구의 동양인이 검은 썬글래스 쓴 모습은 왜 그리도 우습던지 화장실 거울 속의 내 모습조차도 낄낄 웃음이 나오곤 했다.

 

비행기는 태국 방콕에서 김포를 경유해서 L.A 가는 타이항공을 주로 이용했다. 당시 타이항공 요금이 제일 저렴했다. 어떤 날은 샌디에고(SanDiego)까지 내려갈 시간이 부족할 때는 미국 연구 직원들을 L.A 공항 비즈니스 센터로 불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라톤 회의를 하곤 했다. 식사는 코리아 타운 근처에 있는 한국 식당에서 불고기와 갈비를 주로 먹었다. 미국 직원들도 아주 좋아하는 메뉴였다. 그렇게 일을 하고는 공항 비즈니스 센터에 있는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는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빡빡한 출장 일정이었지만 피곤함을 못 느낄 정도로 제품개발에 혼신의 힘을 다했다. 부족했던 잠은 비행기에서 보충했는데 기내식을 먹지 못할 정도로 골아 떨어졌다.

 

그렇게 한국에 도착하면 삼성동 사무실로 직행했다. 한국직원들에게 미국에서 진행했던 미팅 결과를 자세히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당시에는 제품개발을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진행했기다. 미국 연구법인 직원들의 장점은 주로 설계에 관한 부분이었고 핵심 코어부분에 대한 프로그래밍 이었다. 나는 최대한 블록 단위로 구현토록 하였다. 그래야 최신 기술을 접목 시키기도 손쉽고 고객의 요구사항에 따라서 변경도 쉽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최고의 성능을 낼수 있도록 처리속도에도 최선의 방법을 강구하였다. 그렇게 엑스톰은 하루가 다르게 완성 되어갔다.

 

나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도 항상 노력했다. 한 달에 두 번씩 양평에 있는 민박집에 가서는 제품개발로 인한 쌓인 스트레스 해소와 직원들의 단합을 위해 족구를 했는데 팀은 항상 내가 바꾸었다. 서로 소속된 부서별이 아니라 고참 대 신참에 때로는 총각 대 유부남 등 다양한 팀 플레이를 하게 했다. 저녁에는 캠프파이어 주변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면서 친목을 도모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볼링장에 들려서 손과 다리 힘이 다 빠질 때까지 볼링공을 던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회사 살림이 넉넉하지는 못했지만 인도 직원들 경우에는 1년에 한 번씩 휴가를 주면서 왕복 항공권을 회사가 제공했다. 그리고 내가 미국 출장다니면서 사용하고 남았던 백 불짜리 현금 10장씩을 봉투에 담아서 인도 직원의 손에 쥐어주면서 부모님 선물을 사라고 했다. 그럴때면 인도 직원들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직원들의 생일날에는 회의실에서 조촐한 생일파티를 열기도 했다. 생일파티에 앞서서 직원을 몰래 회사 근처 현대백화점에 데리고 가서는 양복을 사주면서,

“김 대리, 이거 다른 직원들에게는 국물도 없었다. 김 대리가 처음이야. 알겠지? 이건 나와 둘 만의 비밀이야” 하면서 생일날 모든 직원들을 한명 한명씩 챙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년 말 에는 전 직원을 데리고 태국과 필리핀 사이판에 데리고 나갔다. 직원들과 함께 공항으로 갈 때 직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회사의 종무식과 시무식을 해외서 하게 된 셈이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족구도 하고 밤에는 직원들과 함께 세상사는 이야기에 그들과 나는 사장과 노동자 관계가 아닌 한배를 탄 동지적 관계였고 때로는 형님 동생이 되었다. 그리고 새해 아침 백사장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부모님계신 한국 땅으로 세배를 올렸다. 먼 타국 땅에서 고향 에 계신 부모형제를 생각하면서 나와 전 직원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조성구의 삼성열전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