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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쟁이에서 벤처 사업가로...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3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4/11/18 [00:02]

월급쟁이에서 벤처 사업가로...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3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4/11/18 [00:02]

나의 사부님의 고객 또 한 놈 인생 골로 가는구나

나의 사부님은 고객

대다수의 이 나라 IT 업계가 그렇듯이 고가의 미국산 컴퓨터 제품을 수입해서 최종 사용자에게 힘들게 판매해도 사람 대접은 커녕 그들로부터 갖은 수모를 겪어야 했던 씁쓸한 현실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었던 충청도 시골 촌놈 출신이 대한민국에서 접근성이 쉽지 않은 ‘비정 형데이터’ 분야에 대한 소프트웨어 원천기술을 확보하여 그들을 이겨보겠다며 오기의 발동을 걸었다. 마치 자갈밭을 옥토로 바꾸고 씨앗을 뿌리는 일과 같았다.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려면 미국산 제품보다 훨씬 앞선 기술에 뛰어난 성능과 기능을 구현해야 가능한 것이기에 좀 더 다양한 경험이 필요했다. 더군다나 월급쟁이 직장생활의 경험이 전부였던 나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다. 회사 경영에 대한 경험도 없었고 창업자금은 물론 함께 일할 직원조차도 없었다. 그저 꿈 많은 예비 사업가가 머릿속에서 그려본 핑 크빛 청사진이 전부였다. 그렇게 창업하기로 결심하던 무렵, 나는 미국산 제품들을 수입판매 하면서 회사 운영 경비를 조달하는 방식과 이로 인해서 좀 더 다양한 경험과 함께 세밀한 사업방향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내가 만들고자 하는 제품은 경쟁사 제품들에 비해서 어떤 방식과 기능으로 차별성을 둘 것인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21세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데이터는 간략하게 ‘정형데이터’와 ‘비정형데이 터’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들 접하는 워드 형태의 텍스트 문서들이 ‘정형데이터’ 영역이다. 그리고 ‘정형데이터’ 이외의 모든 데이터를 IT 업계에서는 ‘비정형데이터’ 로 구별한다. 예를 들자면 음악과 동영상, 그리고 문서 스캔 시 생성되는 이미지와 제품 설계시 생성되는 도면( CAD/CAM)데이터 그리고 병원에서 사용하는 엑스레이와 CT, MRI 장비에서 생성되는 데이터가 모두 ‘비정형데이터’ 영역에 속하는데 이들 데이터의 수량은 가히 천문학 적인 규모로 매일매일 발생된다.

 

나는 직장생활시 기술영업을 통해서 최첨단의 IT 자원을 사용하는 금융전산망시스템에 대하여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는데 은행의 전산업무에 존재하는 사각지대를 알게 된 것이다. 은행은 업무 특성상 매일매일 종이형태의 문서가 대량으로 발생된다. 그런데 종이형태의 문서 를 창고에 보관하고 다시 열람하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어서 은행의 업무효율성을 저해하는 요인중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이러한 분야에 대하여 페이퍼리스(Paperless)를 통한 사무 자동화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처리 시간 내에 수백만 건의 문서를 스캐닝하고 고객의 업무개선을 위해 체계화된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저장하는데 있어서 이미지 데이터의 특성상 핵심기술이 절실했다.

 

내가 이 분야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될 무렵, 고객사였던 국민은행은 전사적으로 ‘종이 없는 사무실’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이미 수립하고 있었다. 종이형태의 문서나 서류가 은행의 업무효율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문서 보관비용이 급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은행이 대 도시에 집중되어 있기에 문서와 서류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도 만만치 않았고 또 임대를 하더라도 관리비 같은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금융사건이라도 터질 경우 수년 전 기록을 먼지를 마셔가면서 찾아야 하는 수고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를 개선코자 한 초기방식은 서류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촬영하는 방식인데 고작해야 수표나 어음이었다. 그 외의 모든 서류는 먼지가 가득한 창고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종이형태의 서류가 페이퍼리스 시스템 구축으로 DB화만 될 수만 있다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시간을 절감케 할 것이다. 은행은 바로 이런 직간접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종이 없는 사무실 구현’을 기획했던 것이다. 2000년 초 당시에는 이 분야에서 미국의 파일넷 (FileNet) 제품과 IBM이 시장지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국민은행 같은 대형은행들은 파일넷 (FileNet)과 IBM 같은 유명 미국산 제품들에 대하여 관심들이 많았다.

당시 하드웨어적인 장치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형태의 서류는 전산처리로 대체하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특히 메모리와 하드디스크 그리고 네트워크 장비의 기술발전 속도라면 은행 업무를 페이퍼리스(paperless)로 대체할 날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관련 분야에 대한 기술발전 추이를 파악한다고 해서 곧바로 경쟁력 있는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품 디자인 및 설계단계 이전부터 고객이 원하는 필수사항은 무엇인지 향후 시스템 업그레이드 방향은 무엇인지를 우선 파악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성능과 기능을 구현한다 하더라도 고객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생활 당시부터 금융 전산망시스템을 운용하는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 현재 그들이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덕분에 내가 구현하고 하는 시스템의 개념을 잡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었다.

이처럼 직장생활 시 구축했던 고객과의 신뢰는 내가 창업을 결심하게 되면서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페이퍼리스를 통한 사무자동화 시스템 분야에서 후발주자로서 나서는 동시에 미국의 선두주자들과 경쟁할 시나리오는 이미 내 마음속에 그려져 가고 있었다. 

 

내가 당시 금융권을 타켓으로 페이퍼리스 시스템 구축으로 업무혁신을 이룰수 있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 전용 제품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핵심요소 기술에 대한 깊이를 다루는 분야에 대해선 다들 부정적이 었다. 미국의 선진 기술에는 기꺼이 비싼 돈을 지불해 가면서도 저자세였던 그들이었기에 내것을 만들겠다는 노력은  아예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한 놈 인생 골로 가는구나

 

어느 벤처기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창업을 결심하자 초기 창업비용 마련이 갑갑했다. 유리지갑과 같은 직장생활 후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성이 없었다. 당시 나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연립주택에서 전세로 살다가 서울 은평구 신사동에 연립주택 13평짜리 집이 전재산이었다. 그것도 재형저축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야 가능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벤처투자에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시기여서 창업투자사를 대상으로 사업제안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름도 없던 예비 벤처사업가가 사업계획서 하나로 창업투자사로부터 자금을 끌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잡상인 취급은 기본이었고 기술의 깊이를 다루는 사업에는 아예 관심조차도 없었다. 당시 창업투자사들은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업체들과 인터넷을 기반으 로 한  응용업체들에 대하여 집중적인 투자를 하던 시기였다. 매번 나의 사업계획서에 대한 반응은 “이 나라에서 이런 사업이 가능하겠습니까? 너무 앞서 가시는 것 같습니다.”였다. 또 어떤 창업투자사는 노골적으로 게임 소프트웨어를 만들기를 종용했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을 하듯 이곳저곳을 다 찾아가 보았지만 그 어느 한곳도 내 사업계획서에 귀 기울여 주는 곳은 없었다. 하지만 장부가 칼을 뺏으면 썩은 무라도 베어야 하는 법, 그럴수록 나는 더 독하게 마음먹고 반드시 창업자금을 마련하겠노라 내 자신에게 다짐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지인이 장기신용은행의 계열사인 장은창업투자사가 최근 벤처기업 투자로 대박을 내서 신규 사업에 대하여 과감한 투자를 할 가능성도 있지 않겠냐고 조언해 주었다. 그 당시 벤처업계에서는 “그 집 돈을 받으려면 고래힘줄보다 더 질겨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스스로가 고래힘줄이 되어 보려고 작심을 한 후 우선 전화부터 걸었다. 

 

“여기 대박 낼 좋은 사업이 있으니 잠시 시간 좀 주시면 찾아뵙고 싶습니다.”라며 담당자에게 날마다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무슨 잡상인 대하듯 하더니 일주일 내내 전화를 했더니만 담당자는 내가 궁금했던지 잠시 시간을 내주겠다고 했다.   

 

담당자와의 약속은 받아 놓긴 했지만 상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는 막막하기만 했다. 누구로부터 투자를 받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벽을 쳐다보면서 상대에게 나의 사업계획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연습을 여러번 반복했었는데, 나의 자신감을 심어주어야 했기에 내가 생각해도 미친놈같아 보였다. 벽에다 투자해 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제 정신이 아닐테니까,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장은창업투자를 방문해서 손님 대기실에서 담당자를 기다리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역시 돈 많은 창업투자사라서 그런지 실내 인테리어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웠고 바닥은 푹신한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그렇게 담당자를 기다리던 중 심사역 이라 는 분이 젠틀한 매너로 나를 맞아주었다.

“사업에는 자신이 있으신가 봅니다. 돈 냄새가 좀 날만한 사업인가요? 우리는 돈이 확실히 된 다는 믿음이 있어야 투자합니다.” 했다. 투자가로서 당연한 말씀이었지만 그의 태도는 너무 안전빵을 원하는 것 같아서 내 마음속에서는 “이게 무슨 벤처투자라고들 할 수 있나요.” 반문이 들었다.

그렇지만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는 법, 어쩌겠는가, 내가 필요한 자금을 그들이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평정심을 되찾고는 나의 사업계획 내용에 대하여 차분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설명을 시작했는데 5분도 채 되지 않아서 그는,

“이거 너무 앞서 나가시는 사업이네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현실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라며 실망스럽다는 듯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나는 “충분히 가능한 사업이고 IT업계가 나아갈 방향입니다. 이 나라에도 기술의 깊이를 다루는 벤처기업이 성공하는 시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반문했지만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제가 이 바닥에서 나름 투자 전문가로서 돈이 될 만한 사업은 느낌으로 척 압니다. 지금 선생님 사업은 돈이 되긴 하겠는데 시기가 문젭니다.”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국민은행을 비롯해서 대형은행들이 저마다 페이퍼리스 사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핵심제품들이 미국산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예상되는데 미국 업체들만 배불려 줄 일들만 남았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기술에만 의 존해야 하겠습니까? 저도 명문대학교 나온 사람들과 일 해봐서 아는데요, 서울대고 뭐고 간에 명문대 나온 놈들이라고 해서 별 수 없던 것 같던데요?” 라며 일갈했더니만, 담당자는 불쾌했던지 얼굴 표정이 이내 달라졌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당신네들 아니면 이 좋은 사업계획을 가지고도 투자 못 받겠냐는 듯 배짱을 부리듯 더 자신감 있게 내몰아붙였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내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역시도 서울대 출신이었다. 

“제가 직장생활 할 당시 서울대에 명문대 출신들이 많았지만 미국 엔지니어들 오면 다들 알아서 눈치나 살살 보면서 아쉬운 소리나 하는 걸 보면 서울대고 명문대고 뭐 다들 별거 아니더 군요.” 했다.

결국, 그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 나를 다시 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이 나라 최고의 명문대학교 출신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패기라면 사업가 기질은 충분하다고 그들은 판단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 추가적인 미팅을 할 때는 진지한 태도로 내 사업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시간들이 약 2주 정도 지난 후  하루는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 커피나 한잔 하자며 방문을 요청했다. 투자자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 하자는 것은 좋은 징조를 의미했다.

“사장님, 저희 회사 임원 전체가 참여하는 투자설명회 기회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의 사결정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은 임원들이 할 것입니다. 부디 꼭 살아남으셔서 창업하실 수 있도록 빌겠습니다.”

고래 힘줄보다도 질기다는 장은창업투자사에서 2주 만에 전체 임원들 앞에서 사업설명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 만으로도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평소에 준비했던 시업계획서 내용에 대하여 집중적인 자체검열을 강화했다. 내가 계획하는 사업 분야에 대한 세계적인 기술동향과 경쟁사 현황 그리고 시장전망에 대한 통계자료들도 꼼꼼히 준비했다. 뿐만 아니라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제품개발 전략을 비롯해서 제품 테스트를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준비하는 동안 나의 사업계획서는 더더욱 탄탄하게 준비되어 갔다.   

그렇게 나의 첫 사업투자 설명회는 심혈을 기울여서 나름대로 알차게 준비했다. 그리고 사업투자 설명회 날 나에게 주어진  발표시간 한 시간 중에 40여 분이 지나면서 나의 사업계획에 대하여 신중한 반응을 보이는 임원진들의 진지한 태도에서 뭔가 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좀 더 자신감 있게 투자를 호소했는데 천만다행으로 단 한 명도 나의 사업계획에 대해 반대하는 임원이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위험부담이 큰 신규 사업 이 라는 것이었다. 사업계획대로 성공하면 대박을 낼 수 있는 기회이지만, 우리나라 IT 현실 의 여건상 성공확률이 높지 않은 사업이라서 초기에 큰 액수의 투자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 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는 포기하기에는 아깝고 그렇다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는 망설여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창업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시드머니(seed money: 종자돈)만이라도 투자해달라고 했다. 창업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 이후의 자금 확보는 내 스스로가 마련해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시드머니로 3억 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실 3억 원은 내가 계획했던 사업을 추진하기에는 말도 안 되는 적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이 금액을 제시한 것은 초기에 창업투자사를 끌어 들이는 전략이었다. 그 당시 장은창업투자는 성공적인 투자로 인해서 신규투자 사업에 대하여 적극적이었고, 내가 그들에게 확신을 심어준 투자대비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 액수였다. 결과적으로 장은창업투자사와 나는 사업성공을 위하여 리스크를 함께 지는 동업자가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들은 나의 사업계획에 대한 치밀한 준비와 열정에 높은 점수를 주고 3억 원 전액을 날릴 각오로 투자했다고 한다. 벤처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자도 때로는 과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창업투자사들은 리스크 분산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사업에 분산투자한다. 열 군데를 투자해서 한 군데가 대박을 내준다는 것은 대단한 승률이다. 그만큼 벤처기업이 성공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그리고 사업에 대한 성공을 위해서 창업주는 미친 듯이 일해야 한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신규 투자를 결정하면 이런 말을 한다.

“또 한 놈 인생 골로 가게 생겼구나.” 우여곡절 끝에 초기 창업비용 3억 원을 투자받기로 결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때까지 회사는 설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중 장은창업투자사의 김 심사역이 전화를 해왔다.

“조 사장님, 저희 사장님 결제까지 나서 송금을 해야 하는데요, 껍데기라도 좋으니 빨리 회사 를 만들고 법인계좌를 알려주세요.”했다. 투자를 결정하니까 자금집행을 서두르는 그들의 모 습에 사업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서 회사를 설립하고 장기신용은행 도곡동지점에 법인계좌를 개설했다. 

삐리릭~~핸드폰 문자 메시지 알람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토록 꿈에 그리던 창업자금에 대한 송금을 완료했다는 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그 순간 갑자기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처음으로 채용한 직원과 함께 도곡동 장기신용은행 지점으로 서둘러 가고 싶었다.

근처 타 은행에서도 카드로 입금내용을 확인 할 수 있었지만, 새로 개설한 법인통장에 첫 창 업자금이 인쇄된 모습이 가슴 떨리게 보고 싶었다. 그래서 삼성동에서 도곡동까지 택시를 탔 다. 그 짧은 이동시간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마치 꿈을 꾸던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 지는 것만 같았다. 나는 24시간 자동화 코너 안에 설치된 CD기에 통장을 넣고 통장정리 메뉴를 눌렀다. 그러자 ‘찌찌직 찌찌찍’ 돗트 프린터의 기계음이 들리더니 이내 통장 정리가 완료되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에 인쇄된 금액의 첫 숫자 ‘3’ 뒤로 ‘0’이 주루룩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애타도록 기다렸던 그 3억 원이었다.

 

그 순간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벅찬 감격과 함께 그동안 무모할 정도로 앞만 보고 내달렸던 나 자신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내 볼에는 뜨거 운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렸다. 3억 원이 인쇄된 통장의 금액을 보고 있자니 흐르는 눈물에 가려서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30분에 한 번씩 불을 켜고 통장을 보고는 한번 웃고 그 러다 또 보았다. 애써 잠을 자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잠은 더 오질 않았다.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든 사업계획서를 들고 가능성이 있든 없던 간에 문전박대를 감내 하면서 그 누군가를 나의 투자자로 만들어야만 했다. 내가 투자받은 그 3억 원은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하면 된다.’는 집념에 대한 결과였다. 언젠가 장은창업투자사의 담당 임원께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조 사장님, 당신이 가진 것은 혈혈단신의 몸뚱이 하나밖에 없었지만, 사업에 대한 열정과 경험 그리고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성, 우린 그걸 믿고 투자한 겁니다.” 

예비 사업가였던 나에게 종자돈 3억 원은 농부의 마음처럼 설레임도 주었지만 가을 추수를 풍성하게 거두어야 할 생각에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나를 믿고 초기 창업자금을 투자한 투자자 입장을 생각해서라도 내가 계획했던 사업은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직원과 단둘이서 소주를 한잔 했다. 

“이 상무! 창업 준비 자금도 들어왔고, 이제부턴 본격적인 창업이니까 우선 체력보충을 위해서 맛있는 것부터 먹으러 가자. 앞으로는 죽었다 생각하고 앞만 보고 달려야 하니까 영양가 높은 것으로 배터지게 한번 먹어보자고.”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찾아간 곳이 뒷골목 삼겹살집이었다. 소주 두 병과 삼겹살, 그렇게 먹은 게 아마도 3만 원어치 정도였을 것이다. 그날따라 쓰디 쓴 소주가 달달하고 향기롭게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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