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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택 기사입력  2013/07/21 [13:17]
2천년만에 밝혀지는 중용(中庸)의 진실-1
상고금문으로 해석한 대학과 중용 제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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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마찬가지로 [중용] 또한 본래 [예기(禮記)]의 한 장으로써 제 31편에 들어있던 것이다.
총 49편으로 구성돼 있는 [예기] 가운데 제 42편인 [대학]은 앞에서 과두문자로 해석한 바 하늘(天)에 드리는 제사, 곧 신께 드리는 제사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예배의 의미를 설명한다고 할 것이다.


중용은 무엇인가.

중(中)은 가운데 중으로 해석되고 있으나 본래 중(中)의 뜻은 신(神)이 내려와 머무는 곳을 의미하고 있다.
중은 둥글게 원을 지어 무리를 지은 집단 가운데 긴 나뭇가지에 깃을 매달아 놓은 것이다. 깃발의 원형이다. 곧, 신이 내려와 있는 곳을 의미한다.
▲     © GoodMorningLonDon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주서한 단옥재(段玉裁 1735 ~ 1815)또한 “갑골문에 보이는 ‘중(中)’자는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이다”라고 언급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무당집을 표하는 것으로 긴 장대 끝에 형형색색의 깃발을 매달아놓고 있다. 멀리서도 쉽게 그 깃발을 볼 수 있다. 전쟁에서 깃발의 의미 또한 마찬가지 이다. 전쟁에 가장 앞에 서는 것은 깃발로 신이 앞장서서 전쟁을 이끌어 간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에서 패해 깃발을 탈취당하는 것은 신을 빼앗긴 것이기 때문에 새 깃발을 만들 수 없다. 빼앗긴 신을 되찾지 않고 새 신을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깃발을 적에게 빼앗긴 군대는 깃발을 되찾을 때까지 깃발없는 군대로 남아있게 된다.

중에 대한 의미는 용(庸)의 고대글자를 살펴보는 것이 그 의미에 정확하게 할 것이다.
고대글자들은 사람중심이 아닌, 신(神) 중심으로 해석해야 옳바른 접근이 되는 까닭에 이 용(庸) 또한 사람의 쓰임이 아닌, 신과 연관된 글자로 해석함이 옳다.

▲     ©GoodMorningLonDon
중용의 중(中)과 용(庸)은 따로 따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중용(中庸)이라는 한 단어로 해석되어야 한다. 용(庸)은 신이 내려서 머물고 있는 장소인 중(中)의 용도를 표현한 글자이다.
정현(鄭玄, 127년 ~ 200년)은 중용(中庸)의 뜻을 풀이하길 ‘중화(中和)의 작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용(庸)이란 상(常)의 뜻이다.’고 풀이하며 용(庸)을 상(常)과 용(用) 두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경전석문(經典釋文)>>중에서
용(用)의 고대글자가 솟대 사진과 일치함이 우연이 아닌 다음에야 용의 풀이를 중과 같이 신이 머무는 곳에서 드리는 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신이 내려 머무는 곳인 소도(蘇塗)에 대한 중국측의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중용의 고문자와 솟대와의 관계를 보다 설득력있게 증언하고 있다.

후한서(後漢書)동이열전-한(韓)
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又立蘇塗,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여러 국읍(國邑)에 각기 한 명을 두어 천신(天神)에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는데 그를 천군(天君)이라 한다. 또 소도(蘇塗)를 두는데 큰 나무를 세워 방울과 북을 매달고 귀신을 섬긴다.
魏志曰:「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蘇塗之義, 有似浮屠.」
[위지]에 이르기를, ‘여러 나라들은 각기 별읍을 두어 소도라 하였는데 여러 도망자들이 여기에 이르면 모두 돌려보내지 않았다. 소도를 세운 뜻은 부도(종교회당)와 유사하다’고 하였다.

진서(晉書)동이전(東夷傳)
俗信鬼神, 常以五月耕種畢,  聚歌舞以祭神; 至十月農事畢, 亦如之. 國邑各立一人主祭天神, 謂爲天君. 又置別邑, 名曰蘇塗, 立大木, 懸鈴鼓. 其蘇塗之義, 有似<西域>浮屠也, 而所行善惡有異.
풍속이 귀신을 믿고, 항시 5월에 밭갈고 씨 뿌림을 마치면 무리가 모여 노래하고 춤추는 것으로 귀신에 제사지낸다. 시월에 이르러 농사를 마치면 역시 이와 같다. 나라의 수도에 각 한사람이 천신에 제사지냄을 주제하는데, 이를 천군이라한다. 또한 나누어진 읍이 두는데 이를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았다. '소도'란 뜻은, 서역의 부도(절)과 같은데, 그 선악을 행함에는 다름이 있다.

소도와 유사한 내용이 성경에도 등장하고 있다.
 
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어떤 사람이 솔로몬에게 말하여 이르되 아도니야가 솔로몬 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 왕이 오늘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 (열왕기상 1: 50-51)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누가복음 1:69 )


성경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제단으로 도망쳐 제단의 뿔을 잡아 생명을 구하는 대목이 사실적으로 기록돼 있다.
 
중용의 고대문자가 소도와 유사한 제단을 그리고 있다면  2천년 넘게 해석돼온 중용의 철학적 의미가 어용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통치철학이라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수 천년 동안  동양 철학의 최고 위치를 차지해왔던 중용이 '신을 위한 제사가 지배집단의 통치수단으로 변질돼 이용되어 온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중용의 본질을 밝혀내는 것이 우선해야한다. 글자의 형태가 제단과 비슷하다고 해서 그 본질마져 같다는 주장은 개인적 감상일 뿐이다.
 
<상고금문으로 해석한 중용 제 2편-'중용이란 무엇인가'에서 '무엇을 위한 중용(中庸)인가' 가 연재됩니다. 2편에서는 제사의 목적, 곧 예배의 옳바른 목적을 중용을 통해 여행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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