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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택(必立) 기사입력  2013/07/19 [19:21]
21세기에 부활하는 흉노
영화로 배우는 세계사 제 3편-정복왕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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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성전  © GoodMorningLonDon

조선에서 수양대군(훗날 세조)이 계유정난이라는 쿠테타를 일으켜 조카 단종을 몰아내던 1453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이 영국의 패배로 끝나던 1453년.
기독교인들의 종가집으로 불려지던 동로마 또한 오스만 제국(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기독교의 상징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의 상징인 이스탄블로 바뀌던 1453년.

2012년 2월 전세계에서 동시 개봉된 터키 영화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정복왕 1453(Fetih 1453)’.

터키 역사상 최고의 제작비와 최고의 흥행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전세계를 상대로 중동의 강자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터키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국가종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 7천 3백만이 넘는 인구 가운데 98% 이상이 무슬림으로 이루어진 나라, 북 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미국 다음의 국방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민 총생산 세계 17위(대한민국 15위-2011년 통계)로 정치와 경제에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최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나라.
 
최근 민주화 시위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터키가 한자어로 돌궐(突厥-터키의 영어식 발음-土耳其人 토이기인 )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중국사에서는 돌궐을 흉노로 묘사하며 북방 몽골평원에서 활동하던 기마민족 전체를 흉악한 오랑케 도적떼라는 흉노(匈奴)라 칭하였다. 물론 고구려 또한 그 흉노 가운데 한 일파이다.

이들 흉노의 일파인 투르크족에 대한 중국식 표기인 돌궐(突厥, Tu-Kiu)의 정식 명칭은 '괵-투르크(Gok-Turk)'로, 하늘(Gok)에 속한 신성한 투르크란 의미였으나 중국에서의 ‘돌궐’은 북방오랑케를 뜻하는 경멸적 용어였다. 이들 중국측 자료인 사서(周書, 隋書, 北史)는 "돌궐은 흉노의 일파로. 성(姓)은 아쉬나(Ashina, 阿史那)였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흉노 일파인 강력한 훈부족이 서쪽으로 밀려가 서유럽을 발칵 뒤집어 놓을 당시 무주공산이 된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는 고만 고만한 세력들이 키재기를 하다가 6세기 중엽 흉노의 또 다른 한 부족에 의해 돌궐제국이 건설된다.

8세기 중엽 아랍의 이슬람문화가 당나라와 이슬람 확장세력에 시달리던 돌궐제국의 약해진 틈바구니 사이로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돌궐은 734년 또 다른 흉노 일파인 위그루족에게 그자리를 물려주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위그루와 터키
▲    터키국기
▲     신장 위구르 자치구 국기

 
 
 
 
 
 
 
▲     위구르 청소년들이  위구르 국기와 함께 터키국기를 흔들며 중국 정부에 맞서고 있다.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터키와 국경선도 맞닿아 있지 않고 그 거리마져 5,000km 가까이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구르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와 관련한 터키의 반응은 그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터키가 세계 인권을 위해 발 벗고 나선것 아닌가 하는 오해아닌 오해를 낳을 수도 있다.

투르크족(돌궐족)들이 사는 곳을 ‘투르키스탄’이라 칭하는데 이들 투르크국가들로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등이 있으며 이들 국가들은 20세기 말 소련연방으로 묶여있다가 한꺼번에 독립을 쟁취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     인구 500만명 이상되는 투르크계 국민이 있는 나라중 신장 위구르만이 독립국이 아닌, 식민지로 남아있다.

투르크 일파인 위구르족들 또한 ‘동투르키스탄’이라는 나라를 세웠으나 1950년 한반도 전쟁으로 인해 세계의 시선이 한반도로 쏠릴 뜸을 타서 중국정부는 슬그머니 ‘동투르키스탄’과 '티벳'을 침공하여 강제로 합병시킨다.
▲     위구르와  티벳은 소수민족이 아니다. 각각 한반도 10배 이상의 면적과 500만 이상의 민족들로 구성된 중국의 식민국가들이다.



여기에서 현재 범투르크 민족주의의 맹주로 떠오르고 있는 터키의 역사를 간략하게나마 짚어볼 필요가 있다.

10세기 경 셀주크라는 지도자가 이끄는 일단의 유목민들이 볼가강을 넘어 페르시아(현 이란)로 스며들더니 이란 북부에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이슬람교를 받아들여 수니파로 개종하게 된다.
이들은 처음에는 페르시아 왕조 용병으로 활약하다가 점차 페르시아에 동화되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이 대목은 로마제국이 외국 용병들을 고용하여 국방을 맡기더니 그 용병들에 의해 멸망의 길을 걸었던 것과 비슷하다.
▲   이슬람의 90%가 수니파(경전중심의 정통파 )이고 10% 정도가 시아파(인물중심)이다. 시아파가 정권을 잡은 국가의 경우 정치의 최고 의결기관은 종교의 우두머리가 된다.

1071년에는 비잔틴 황제 로마누스 4세 디오게네스를 포로로 붙잡을 정도로 강력했던 셀주크 제국은 13세기에 들어와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13세기 말, 셀주크 제국이 몰락하게 되자 아나톨리아(소아시아)지역에서 투르크계열의 한 유목집단이 부상하게 된다. 오스만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지도자로 하는 이들 부족은 동로마 제국과 일전을 불사하며 세력을 키워가더니 14세기 말에는 발칸반도 제후국들을 발 밑에 두기에 이른다.

1453년, 메흐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세계만방에 공포하였다. 이로써 서로마 멸망의 결정적 한 방이 되었던 아틸라와 동로마의 마지막 숨통을 끊었던 오스만 둘 다 돌궐, 곧 흉노라는 한 뿌리에서 뻗어나간 후손들로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동로마 전역과 아프리카 북부, 아라비아 반도 일부, 발칸반도 전체를 아우르던 오스만 제국은 1922년 메흐메트6세의  폐위를 종점으로 600여년의 장수국가의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된다. 

 
▲     동로마 대부분과 북아프리카, 이집트, 발칸반도 등을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


제국 해체의 결정적 동기는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맹국(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으로 참전했다가 패전국이 된 까닭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들의 운명은 승전국인 연합국들의 식탁에 올려진 덩치 큰 생선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오스만 제국의 쇠락으로 인해 그 지배를 벗어난 발칸반도 국가들이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라고 각 국가들이 민족을 중심으로 독립을 쟁취해가며 미독립 국가들이 들고 일어서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고 말았다.


 
▲     한 때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세계의 화약고 발칸반도
연합군의 이스탄불 점령은 터키(당시 오스만)의 민족 운동에 불을 지핀 것과 같았다. 무스타파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이 이끄는 터키의 독립 전쟁은 1923년 로잔조약에서 신생 터키 공화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식 후계 국가라는 국제적 인정을 이끌어내게 된다.   
케말 아타튀르크 장군은 터키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수도를 이스탄블(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저항 운동 본부가 있었던 앙카라로 옮겼다.

명실공히 오스만 제국의 적자로 인정받아 국가 이름마져도 터키 공화국( Türkiye Cumhuriyeti 튀르키예줌후리예티-줄여서 터키(Türkiye 튀르키예)로 새롭게 탄생한 터키는 투르크 제국을 부활시키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비록 이슬람이 국가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종교와 정치는 분리돼 있다고 해도 터키 국민의 98% 이상이 이슬람을 믿고 있다는 것는 십자군 당시 기독교인들의 만행이 어찌했는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고 있다.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로 인해 중앙아시아 지역에 ‘투르크 벨트’가 조성되자 오스만 제국의 공식 후계자인 터키는 ‘범투르크 민족연합’ 탄생을 위해 선봉에서 깃발을 치켜들었다. 터키를 중심으로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키르기스탄,투르크메니스탄 6개 독립국과 러시아 내 미독립 국가 및 중국의 자치구인 위구르 자치구 등이 부상함으로써 세계 판도가 새롭게 구성될 소지가 다분하다.
 
투르크 민족들이 모두 이슬람을 믿고 있으며 아랍 민족주의와 투르크 민족주의가 이슬람을 중심으로 뭉쳐지게 된다면 세계의 힘의 균형은 한순간에 이쪽으로 쏠릴 공산이 크다.
러시아에서 끊임없는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체첸 민족 또한 투루크어를 쓰고 있으며 중국에서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위구르 자치구 또한 2,000만명인 인구 가운데 45%가 투르크일파인 위구르족으로 구성돼 있다.
중국정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티벳의 독립운동보다 위구르 독립운동에 더 심각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또한 범투르크계 민족운동을 ‘알카에다의 루트’로 보고 있으며 위구르 이슬람 세력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     투르크(돌궐-흉노)의 부활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     © GoodMorningLonDon
10년 넘게 터키의 총리직을 맡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가 최근 터키에서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대해 ‘서방측의 음모’라며 강력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도 투르크 민족주의에서 나온다고 볼 것이다.
 
세계적 경제불황에도 불구하고 2010년 9.2%, 20118.5% 등 높은 성장율이 부패와의 전쟁 수행과정 속에서 잠시 멈칫거리고 있다해도  에르도안 총리의 강력한 리더쉽이 반정부 시위대위 외침만큼 후퇴할 것에 대한  전망이 나오지 않는 것은 종교와 민족의 결속력 때문으로 풀이된다.
 
또한 영어에 이어 21세기 전세계 투르크인들을 결속시키는 투르크어가 이슬람의 세계화를 가속화 시키고 있는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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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쉽다~ JW Lee 13/07/20 [17:47] 수정 삭제
  저같은 초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내용. 시아파와 순니파도 책보면 아주 복잡하게 나오는데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시네요. 나중에 터키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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