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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택(必立) 기사입력  2013/06/21 [19:37]
서쪽으로 간 흉노
영화로 배우는 세계사 제2편- 글래디에이터와 아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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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년 북쪽 장벽을 순시하던 로마의 영국 주둔군 사령부 막사로 로얄메일이 한통 도착한다. 눈보라를 뚫고 달려온 전령이 메일을 전달하고 막사 밖 화톳불에 몸을 녹이고 있을 때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다.

“무슨 일이오?” 기마부대 대장이 급히 달려오느라 콧김을 품어내는 말에서 내리면서 전령에게 묻는다. 전령이 대답대신 사령관 막사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기마대장이 투구를 벗어들고 막사안으로 들어선다. 이미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좋은 소식이 아닌가보우.” 막료들 눈치를 살피며 사령관 손에 들려있는 두루마리에 관심을 표한다.

“좆됐다.” 사령관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두루마리를 던져준다. 그것을 멋적게 받아든 기마대장은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라틴어를 아나.”

“영국을 스스로 방어하랍니다.” 참모 중 하나가 거든다.

“아니 지금까지 스스로 해왔지 본국에서 뭘 도와준데 있다고…” 기마대장의 말에 뒷짐을 지고 돌아서 있던 사령관이 천천히 몸을 돌리며 기마대장을 쏘아본다.

“같이 갈텐가?”

‘어디로? 로마로?”

“어차피 월급도 안나올 마당에 이 빌어먹을 땅에서 뭘 기대하게 있다고…” 막료 중 한명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만지작거리며 내뱉는다. 기마대장은 잠시 머뭇거린다. 이미 이러한 순간이 올 것을 전혀 예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조금 이르다 싶었다.

유행병처럼 번지는 각 지역 사령부처럼 영국에서도 황제를 세울 것인가, 기울어가는 로마를 위해 마지막 충성을 다해 야만족과 일전을 벌일 것인가. 대답 한마디에 목이 붙어있을 것인가 아닌가가 달려있다. 시실리 태생의 기마대장과는 달리 사령부 막료 대부분이 이탈리아 반도 밖의 용병출신들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가 BC 55년과 54년 두 차례 원정이후 400여 년을 영국 땅에 주둔했던 로마군들의 마지막 가상 스토리이다.
한 때는 로마의 장군이었다가 초대 서고트 왕으로 추대되어 로마를 위협한 알라리크가 사망한 410년, 로마의 영국 철수가 시작되고 그 후 41이 지나 451년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었으니…
(로마몰락의 배경과 시대상황은 필자와 알라리크와의 인터뷰를 참조바랍니다.)
 http://blog.daum.net/touristclub/5164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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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원을 두고 대립한 흉노와 한나라와의 50년 전쟁이 양 국가의 핍폐를 가져온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BC 121년 한나라와의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흉노 일파가 동쪽과 서쪽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그곳에 남아있던 부족들마져 새로운 지배층의 등장을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4천만에 달하던 한나라 인구수가 2천만명으로 줄어들 정도로 한나라 또한 치명상을 당했다고 볼 것이다. 왕망의 신(, 8년~23년)의 건국으로 한나라는 막을 내리게 된다.(역사에서는 이것을 전한이라 부른다.)

김씨 세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왕망의 신나라가 창졸간에 망하고 유씨일파가 후한을 재건하자 김씨일파는 유씨들의 도륙을 피해 한반도 남쪽으로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후한이 들어서고 166년에는 ‘대진국왕(大秦國王) 안돈(安敦)’-로마의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제위기간(AD138-161)의 사신이 한나라에 도착하여 교역을 청하기까지 하였으나 당시는 후한이나 로마나 전성시대가 마감되고 기울어가는 때였다. 로마와 마찬가지로 후한 또한 주변 민족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국경수비대를 구성한 것이 멸망을 제촉하게된다.


▲  리들리 스콧 감독  <글래디에이터 > 한 장면 :리처드 해리스(황제 분 ) ,호아킨 피닉스(아들 코무더스 역)    © GoodMorningLonDon
2000년 개봉된 글래디에이터(Gladiator)는 로마의 전성시대인 팍스로마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황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AD 180년 다뉴브 강가에서 게르만족을 대패시킨 막시무스(러셀 크로 분 )라는 장군에게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묻는다.

“로마 최고의 장군이여, 짐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하는가?”



“집으로 보내주십시요.”



자신의 시대를 끝으로 황제 시대를 마감하고 공화정 시대로 되돌리려 했던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코나 묻히고 다니는 아들보다 장군 막시무스를 후계자로 삼고 싶어한다. 황제 시대에서 공화정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코무두스보다 막시무스가 적임자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제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막시무스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는 노장 사상에 물이 깊게 들어 있었다. 이 대목은 요즘 영화감독들의 유행인 듯 하다.


어쨋거나 우리에게 <명상록>이라는 철학서로 잘 알려진 로마 5현제 중 한 사람인 로마제국의 16대 (121년 4월 26일 - 180년 3월 17일)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대를 끝으로 군인 황제 시대가 시작되어 ‘팍스 로마나’는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한나라(후한) 또한 로마와 마찬가지로 이민족 용병들로 국방을 맡기는, 국가의 전성기가 저무는 때 였다. 조조, 유비, 손권이 등장하는 삼국지가 개봉되고 조비의 아들 조비에게 제위를 물려줌으로써 후한은 종말(AD220년)을 고한다.

흉노의 분열이후 동흉노 일부가 한반도로 북흉노 일부가 서쪽으로 정처없는 발길을 떼자 남흉노 출신의 유연이 삼국시대를 마감한 사마씨가 세운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이후 5개의 비한족 국가들인 흉노(匈奴), 선비(鮮卑), 저(), 갈(), 강(), 과 회수 북부의 여러나라들이 난립하는 5호 16국이 시작되고 남북조시대로 연결된다.

동쪽에서 격동의 시대가 도래할 때 서쪽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국 본토박이인 한()민족과 대립한 비한족들이 들고 일어설 때 로마 또한 이민족들이 로마에 대항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중심에 우뚝선 한 사람이 있었으니…


동양에서 광개토대왕(374-412)이 중원을 호령하고 있을 무렵 서양에서는  아틸라(406-453)가 유럽 전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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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년 6월 20일 지금의 프랑스 트루시아 벌판에는 (Troyes-파리 남서쪽 180킬로,자동차로 2시간 거리) 40-60만 대군이 맞서고 있다. 훈족 황제 아틸라가 이끄는 동고트 주력의 20-30만과 서로마 총사령관 아에티우스가 지휘하는 서고트 주력의 20-30만이 맞붙어 이 날 하루 전사자만 15-20만 명에 이르는 세계 1차 대전이 벌어진 것이다.

이 살롱 대전투(카탈루니안 전투)가 지금까지는 아틸라의 패배로 묘사돼 왔으나 서로마 연합군인 서고트왕인 테오도리쿠스1세가 전사할 정도였으며 서로마측 총사령관인 아에티우스가 그리 크게 환영받지 못한 것만 봐도 서구 중심의 역사가 잘못 기술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로마인 이야기’를 쓴 사오노 나나미 또한 아틸라가 생전 처음 큰 패배에 충격을 받았다고 썼으나 큰 패배에 혼쭐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줄행랑 친 아틸라가 불과 1년도 안되어 대군을 이끌고 이탈리아 반도를 접수하려 한다?
 
파두아, 베로나, 밀란, 피비 등 이탈리아 북부가 추풍 낙옆처럼 아틸라 앞에 무릎을 끓은 것만 봐도 살롱 대전투가 아틸라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기 보다는 기울어가는 로마의 몰락(476년)에 마지막 타격을 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틸라 관련 역사는 필자와 아틸라 인터뷰를 참고바랍니다.)

http://www.londontimes.tv/serial_read.html?uid=74&section=sc19>
▲  라파엘로가 바티칸 궁에 보르지아 룸에 그린 아틸라와 레오 1세 협상 장면   © GoodMorningLonDon

이탈리아 원정에서 황제와 교황이 챙겨주는 금은보화를 가득싣고 본거지로 돌아온 아틸라가 새 장가를 들었다가 급사를 하자 훈 왕국은 금새 와해가 된다. 아틸라 후계자들이 게르만 연합군에 번번히 패하여 훈족 지도자인 이네르크는 전쟁에 지친 훈족을 이끌고 자신들의 주 무대라 할 수 있는 스탭지역을 찾아 흑해 서안과 발칸반도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무주공산 영국과 터키의 역사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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