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박운택 기사입력  2013/05/17 [00:30]
밀레이의 '오필라아'를 찾아서
명작과 함께하는 영국 역사 여행-1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지난 12일, 27년이라는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서 자신의 1499번째 경기를 끝으로 은퇴한 알렉스 퍼거슨 경의 총 재산은 3천 4백만 파운드( 580억)로 전, 현직 감독들 가운데 최고 부자로 알려졌다. 한 사람이 축구 선수 감독으로 40여년 동안 쌓은 재산보다 화가 작품 한 점 가격이 더 높다면 이 또한 일반 세속들의 시선을 잡아두기에 충분하다.

3천만 파운드에서 4천7백만 파운드(한화 500억에서 900억원)으로 평가되는 그림 한 점이 영국 한인촌에서 그려졌다면?

 
영국 한인촌인 뉴몰든에 화가들의 이름이 널려있는 것을 그 지역 사람들조차 모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절의 여왕 5월, 굳모닝런던과 함께 느린 발거음을 그 동네로 옮겨보자.
▲     © GoodMorningLonDon


런던 시내에서 남서쪽에 있는 뉴몰든은 윔블던과 킹스톤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만 오천명이 넘는 한인들이 반경 1킬로미터 내에 모여살고 있는 곳으로 유럽 유일의 한인촌을 형성하고 있다.

그 동네를 관통하고 있는 A3 바로 옆에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이름이 골목마다 이름지어 있다. 그 가운데 오필리아를 그린 밀레 길목이 위치하고 있다.

▲     © GoodMorningLonDon


밀레이 (Sir John Everett Millais 1829-1896)가 그린 오필리아(Ophelia )가 오늘 여행의 주인공이다.

현재 테이트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오필리아는 1851-1852년 사이에 그려진 작품으로 세익스피어의 햄릿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죽음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문학 작품 속에서 가장 시적으로 표현된 오필리아의 죽음 장면이 밀레이를 통해 그림으로 재탄생 되었다.
▲ John Everett Millais 1851–1852 Oil on canvas  76.2 cm × 111.8 cm (30.0 in × 44.0 in)     Tate Britain, London   

밀레이는 오필리아를 두 단계로 그렸는데 첫 단계가 풍경이고 두 번째 단계가 모델을 사용한 인물 묘사이다.
첫 단계인 풍경 배경이 바로 한인촌 근처를 흐르는 혹스밀강(Hogsmill River)이다. 오랫동안 풍경의 배경이 되는 곳을 추적한 바바라 웹은 그 장소가 올드 몰든의 처치로드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밀레의 절친한 화가 친구인 윌리엄 홀맨 헌트 또한 그 근처에서 그림 작업(The Hireling Shepherd) 중이었다.

세익스피어 작품 묘사대로 꽃 잎이 떨어져 흐르는 혹스밀 강을 작품 배경으로 택한 밀레이는 햄릿 속에서는 묘사되지 않았으나  당시 빅토리안풍의 "꽃의 언어"를  반영하고 있다.  붉은 양귀비 꽃은 잠과 죽음을 상징하고 있다.

 
▲ John Everett Millais 1851–1852 Oil on canvas 76.2 cm × 111.8 cm (30.0 in × 44.0 in)Tate Britain, London
  


작품 속에서 뚜렷이 묘사되지는 않고 있으나 강 둑의 오른 쪽에는 두개골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러운 강 둑 풍경이든 아니든, 당시 그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그의 친구의 작품(The Hireling Shepherd) 에서도 두개골은   나방 속에서 등장한다.

작품의 배경 구상을 마친 밀레이는 1851년 5 개월 동안 하루 11시간 이상을 두번 째 단계에 몰두하게 된다. 

라파엘전파형제회( Pre-Raphaelite Brothers: PRB) 동료였던  윌리암 홀맨 헌트가  '세상의 빛(The Light of the World )'을 그린 장소인 우스터팍이 바로 코 앞인 이곳 혹스밀 강둑에서 궂은 날씨를 견딘 보람은 그대로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엘리자베스 시달' 이라는 19세의 아리따운 모델을 뮤즈(작가나 화가에게 영감을 주는 사물이나 인물)로 하여 밀레이는 2 단계 작업에 들어간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모습처럼 완전 드레스 차림으로 욕조 속에 모델을 누인다. 한 겨울인 까닭에 난로로 욕조 물을 데우게 하였으나 그 마져도 치우도록 한다. 덕분에 모델이 독한 감기에 걸려 추가 치료비까지 물어야 했으나 그 효과는 만점이다. 한 겨울  차가운  욕조 물 속에 누워있는 모델의 표정이 혹스밀 강 차가운 물 속에 잠겨가는 오필리아의 식어가는 얼굴 표정으로 실감있게 투영된다.

 
▲     ©GoodMorningLonDon


1852년 왕립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된 '오필리아'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타임지는 "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죽어가야만 했던 아름다운 오필리아에 대한 연민이,  잡초가 우거진 도랑 속에 누워있는 여인으로 둔갑시키는 삐딱한 그림이다."라며 "농장에서 젖 짜는 소녀가 풀장에서 놀고 있는 그림"이라는 식으로까지 비판을 받았다.

밀레이의 열렬한 후원자인 유명한 미술 비평가인 ‘존 러스킨’까지 가세한 악평을 받아야 했던 ‘오필리아’는 20세기에 들어서야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다.

1936년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가 한 저널을 통해 “영국의 라파엘전파들의 초현실주의 향기에 어떻게 눈 멀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파엘 전파 화가들은 눈부신 여인들이 누구인가를 보여줬으며, 가장 매력적이고 소름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를 가져왔다.” 라고 발표했다. 1906년 일본 소설가인 나츠미 소스키는 그의 소설 속에서 ‘오필리아’에 대해 “상당히 미적인 것’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그 덕분인지 이 작품은 일본에서 높은 인기를 얻었으며 1998년 이후 10년 동안 일본 전역에서 전시된 바 있다.


 한국에서 온, 지극히 동양적 시각으로 감상해본 밀레이의 '오필리아'는 또 다른 향기를 풍겨온다. 바로 그림 왼쪽 언덕에 보일 듯 말듯 그려진, 영국에 흔하디 흔한 참새이다.
▲     © GoodMorningLonDon

아름다운 여인이 양 팔을 순교자 자세로 찬송가를 부르며 죽어가든 말든, 그 죽음을 어떤 두개골이 바라보든 말든, 무심히 하늘로 시선을 주고 있는 작은 새 한마리... 밀레이가 동양적 사고를 했을리 없겠으나 예술이라는 궁극의 세계는 지역과 지역 시대와 시대를 뛰어넘는 것임에는 분명하다.
 
▲    처치로드의 유래가 되는 St. John's Baptist Church in Worcester Park
   © GoodMorningLonDon

 
▲ 지금도 도랑 같은 혹스밀 강이 흐르고 있다.    © GoodMorningLonDon

킹스톤 시청을 가로질러 혹스밀강이 흐른다. 강 하류에 1293년도에 지어진    Clattern Bridge 위로 지금도 2층버스가 지날 정도로 튼튼하다.   © GoodMorningLonDon
 
▲  맞닿은 템즈강을 통해 1984년 연어가 올라올 정도로 혹스밀 강이 깨끗해지고 있다.   ©GoodMorningLonDon
▲처치로드에 있는 한인들이 즐겨찾는 Toby Pub.  한 때는 혹스밀 물방앗간이 있던 곳이 레스토랑으로 변했다.  영국 음악가들과 한인 몇 몇이 2주에 한번씩 이 펍에서 밀레이 라는 모임을 갖고 있다.    © GoodMorningLonDon

 
<연재 예정>
2편 -George Romney (1734-1802)-넬슨 제독의 연인이었던 엠마 해밀톤을 그린 화가로 당대 유명 인사들의 패션너블한 그림을 주로 그린 영국의 대표 초상화가이다.

3편 -William Turner(1789-1862)- 영국 대부분의 가정에 복사판 그림이라도 한 점정도 걸려있을 정도로 영국 대표 풍경화가이다. 테이트 겔리리 뿐만 아니라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 박물관 등 전세계 유명 박물관에 그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4편 -Sir Thomas Lawrence (1769-1830)  여관업을 하는 서민가정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한 로렌스는 18세 때 이미 런던에서 그 명성이 자자했을 정도로  왕립 아카데미 교장까지 오르게 된다. 

5편 -Sir Edwin Henry Landseer (1802-1873) 영국에 여행온 사람이면 트라팔가 광장 사자상 앞에서 사진 한장 박는 것이 영국 방문의 증거가 되고 있다. 트라팔가 전투에서 프랑스 군으로 부터 노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사자상이 에드윈 핸리 렌시어의 작품으로 소와 개, 사슴 등 동물화가로 유명하다.

 
6편- Sir Anthony van Dyck (1599-1641) 그의 사후 150년 동안 영국 초상화에 가장 영향을 준 안토니 반 딕은 궁중화가로 가장 유명하다.

 
7편-Sir Joshua Reynolds (1723-1792) 왕립 아카대미 초대 교장으로 죠오지 3세는 1769년 기사 작위를 수여했다.

8편-Sir Godfrey Kneller, 1st Baronet (1646-1723)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영국을 대표한 초상화가로 찰스 2세에서 죠지 1세에 걸쳐 영국 왕족들을 그려온 궁중화가이다. 

 
9편-Thomas Gainsborough (1727-1788) 방직업자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13살 때 런던으로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다. 왕립 아카데미 설립 멤버 중 한 사람. 왕과 왕비의 초상을 그렸음에도 기사작위는 받지 못했다. 

 
(위 연재는 작가의 사정에 따라 순서가 바뀔수 있습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GoodMorningLondon의 모든 기사는 출처 명기시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광고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포토뉴스

이전 1/36 다음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