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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여행 긴 여행기

카멜롯에서 경험한 천지창조

박운택 | 기사입력 2013/02/21 [19:02]

짧은 여행 긴 여행기

카멜롯에서 경험한 천지창조

박운택 | 입력 : 2013/02/21 [19:02]

엄마 없이 떠나는 첫 여행

1박 2일 짧고도 긴 여행

 

“괜찮겠어요?” 아내는 아이들 여행 가방을 챙기며 지금까지 수 십번 넘게 질문한 내용을 반복한다. 그 대답 또한 변함없다. “부딪혀 보는 거지 뭐.”

아이들 하프텀(학기별 중간 방학)동안 얼마 전부터 생각해온 일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6살박이 영웅이와 4살 박이 영광이를 엄마 없이 아빠랑 여행을 떠나보내기로 한 것이다. 아내의 걱정은 말 귀가 통하지 않는 이런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300마일 넘게 달려갈 일 보다도 자신의 몸조차 도움이 필요한 휠체어 탄 아비가 제대로 여행을 이끌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10학년인 둘 째 은찬이가 동행하기로 한 것이 아내가 이번 여행을 최종 승인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14살, 6살, 4살 아들들을 차에 태우고 장장 1,000킬로가 넘는 여행을 출발한 것은 18일 오전 9시 였다. 물론 운전병인 내 호주머니에는 요즘들어 부쩍 부어오르는 왼발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진통제 한 통과 기타 일상 복용 약들로 가득 실탄을 채워두었다.

집 근처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네비게이션으로 최종 목적지를 확인하였다. 목적지까지는 넉넉잡아 6시간 . 아이들이 장시간 차 속에서 견뎌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어오르는 왼 발 통증을 진통제로 막을 수 있는가 하는 것도 이번 여행의 또다른 복병이었다.

 

에덴 동산으로 출발!

집에서 Eden project 까지 236마일, 5시간 정도 걸리는 여행길이 첫 출발부터 삐긋거렸다. 원래 계획은 지방도를 통해 영국 풍경을 감상하며 갈 예정이었으나 네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방향은 고속도로로 향해지고 있었다. 지방도나 고속도로나 비슷한 거리와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예상됐는데 고속도로 여행의 단순함이 결국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장애물로 등장할 줄이야..

결국 M4 고속도로에 오른지 한 시간만에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막둥이 영광이 울음보가 터진 것이다. ‘엄마 언제와?’ 로 시작한 그의 황소같은 울음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려서야 잦아들었다. 단조로운 고속도로 여행은 아이들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새삼 사무치게 느끼는 순간이다. 그래도 아직 핵폭탄이 터지지않은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며 운전에 집중한다.

이미 지난 3년 전  전 가족이 독일까지 자동차 여행을 한 경험이 있었기에 그 4분의 1도 안되는 거리에 별 어려움이 있겠냐 싶어 출발했지만 아이가 보채기 시작하자 용기 백배하던 아비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4시간이 넘는 지루한 고속도로 주행이 끝나고 영국에서 손꼽히게 아름다운 다트무어 국립공원을 가로지를 생각에 모짤트 음악으로 분위기를 잡을 무렵 우려했던 핵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영웅이가 드디어 폭발한 것이다. 왜 핵폭탄이라고 부르는가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듯 하다. 영국에서 가장 가난한 애비가 무슨 돈으로 사립학교 유치원을 보낼 수 있었는가는 순전히 지가 타고난 복이겠으나 한 번은 음악선생이 부모를 보자는 편지가 왔다. 아내는 덜컥 겁부터 낸다. ‘또 무슨 일 터졌나?’

음악선생이 보자는 편지에 내심 무슨 내용인지 짐작은 가지만 아내에게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영웅이 목소리가 너무커요. 성악을 시켰으면 합니다.’ 음악선생의 과장된 몸짓에 전형적인 영국 귀부인인 이사장까지 거들고 나설 정도다. ‘학교가 쩌렁 쩌렁 합니다. 영웅이 목소리에….’피아노와 성악을 자신이 직접 가리키겠다는 음악 선생님의 제안을 정중히 물리치느라 짧은 영어가 고생좀 했다.

동생까지 학교에 다닐 때가 되자 두 놈을 모두 학비 면제 해주겠다는 이사장의 호의에 ‘벼룩이도 낮짝이 있어야지요.’하며 집 앞 공립학교로 전학을 시킨게 벌써 1년 반이 되었다. 굳이 이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이유는 이번 여행에서 영웅이가 다녔던 그 학교의 교육 방법이 큰 역할을 하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참을대로 참다가 터진 영웅이 울음보는 막을 길이 없다. 영국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다트무어 국립공원을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른다. 막무가내로 집으로 돌아가자는 영웅이 외침에 모짤트고 다트무어고 다 나빌래라가 되어버린 시간이었다.

 

에덴 프로젝트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한국식으로 에덴 하면 못알아 듣는다. 에덴이라고 발음하는 것은 불어에 가깝고 영어식 발음은 이든[i:dn]이다. 아무튼 장장 7시간의 사투 이 후 우리를 실은 차는 에덴 동산에 도착하게 된다. 폐장 2시간을 남기고 표를 사는 우리를 보고 다음 날도 오라며 친절한 안내를 해준다. 장애인과 노인 방문객들을 위하여 전동 휠체어가 잘 구비되어 있다.

새 천년을 맞이하여 영국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세 개 프로젝트(런던아이, 밀레니엄 돔, 에덴프로젝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이 곳이 꼽히고 있다. 년간 수 백만 명이 예전 폐광촌이었던 이곳을 방문한다니 한국의 폐광촌 살리기로 카지노 판을 벌려놓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진다. (에덴프로젝트에 대한 글은 아이디얼 가든 대표인 임춘화 가든디자이너의 글를 참고 바랍니다. )

축구장 몇 개 보다 큰 온실에 들어서자 제일 신이 난 영웅이는 분신처럼 가지고 다니는 탭으로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내가 가지고 들어간 카메라 렌즈는 느닺없이 변한 온도에 뿌옇게 변해버리고 만다. 만 종이 넘는 식물들을 정성스레 보존하는 것을 보며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체적 모습을 본 듯한 감동에 빠져든다. 아담과 이브가 이런 낙원에서 살았으리라. 물론 훨씬 아름답고 규모도 장대했겠지만… 어쨋거나 자외선이 차단된 완벽한 공간에서라면 인간 수명이 천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러시아 과학자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한국은 이미 아열대 기후로 변화하고 있다니 이와 같은 대규모 온실이 필요없겠으나 미래 환경과 관련한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일이라는 것도 여행을 통해 가져본다.

어느 전시장이든 출구쪽에 매장이 있어 관람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있다. 에덴 프로젝트라는 이름과 달리 방문객들의 지갑을 열기에는 많은 부족감이 있다. 이곳에 오는 길에 보았던 풍력 발전을 위한 풍차들이 소형으로 제작되어 있기를 바랬으나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는다. 어린 줄만 알았던 영웅이가 풍차의 용도와 전기에 대해 영광이에게 설명할 때 그것을 듣고 있던 아빠가 내심 놀랐던 것도 알려줄겸 직접 풍력 발전 풍차를 만들어볼 생각도 가져본다.

 

두 시간의 주마간산격 온실 구경이 끝나자 땅거미가 짙어져있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미 어둠이 시작돼 나그네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 속에서 짧은 가족 회의가 시작된다.

‘내일 이곳에 다시올까?’

처음엔 스케이트장에 다시 올 생각에 찬성을 하던 영웅이가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는 형의 꼬임에 쉽게 포기한다. 갈 길이 멀다. 땅끝 마을로 갈 것인가 장 선생님이 추천한 아더왕 전설을 찾으러 틴타겔로 갈 것인가.

 

아더왕을 찾아서

오늘 같은 추세로라면 여행이 아닌, 자동차 주행이 되고 말 것이다. 7시간 달려와 달랑 2시간 구경하고 돌아가게 생겼다. 은찬이 폰을 빌려 급히 틴타겔을 검색한다. 한 시간 거리면 오늘 그 곳에 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모았다. 에덴동산 말고는 구경할 것이 없는 이 시골 구석에서 하루를 묵어가기는 여행일정이 너무 짧다. 아이들 의견이라고 해야 이미 아빠 마음에 정해져 있지만 토론과 결정을 교육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한 목적인 까닭에 형식적이나마 의견을 모았다.

스마트 폰 인터넷이 불안전한 까닭에 틴타겔 근처에 숙소를 정하기로 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호텔로 전화를 건다.

“가족이 머물 수 있는 방 있습니까?”

“몇 분이죠? “

“성인 한 명 아이들 세 명”

“가능합니다.”

“우편번호가 어떻게 되죠?” 네비게이션에 호텔 우편번호를 찍으며 예약을 서두른다.

“그냥 오시면 됩니다. 방 준비해 두겠습니다.” 동구권 아가씨 발음의 상대방의 친절함에 꺼내려던 카드를 집어넣는다.

영어로 대화 할 때는 가능한 짧게 하는 것이 이제 습관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핵심사항을 놓치는 경우가 있다. 네비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차를 몰며 숙박료와 아침 식사 여부를 재확인해둘 것을 잊은 것이 걸렸다.

‘어차피 한 시간이면 도착할 것인데 뭘, 그 때 확인하면 되지.’ 넉천주의자들의 천성은 게으름의 표본이다. 게으르다보니 낙천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낙천주의자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으니…어린 아들들 앞에서 아빠의 본색이 들어나고 말았다.

 

한국으로 귀국한 집사님이 선물로 주고 간 중고 네비게이션이 업그래이드를 안해서인지 자꾸만 어먼데로 길을 안내한다. 영국 시골길이 초행이라면 낮에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겨우 차 한대 지나갈 정도로 좁은 길에 자전거만 만나도 지날 때까지 멈춰서서 기다려야 하는 것이 영국 시골 길이다. 그런 길이 수 킬로에 걸처 이어져 있다면 그것도 초행길 밤 운전이라면 아무리 낙천주의자라도 입술이 탈 수밖에 없다. 저 쪽에도 차라도 한 대 오는 날에는 여행길이 고행길로 변하는 것은 순간이다.

아이들은 배고프다고 아우성이죠, 아비는 네비게이션 따라가다 어먼 길 만나 빙빙 돌아야지요, 차 기름은 떨어져가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아이들이 낮처럼 보채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지들도 참여한 회의를 통해 결정한 일이니 뒤로 물리자고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운전하는 아빠가 잔뜩 긴장한 모습이 아이들 눈에도 읽혀진 모양이라…

4살짜리 막동이가 딱 한마디 했다. ‘붸리 붸리 타이어드…”

한 시간이면 넉넉히 도착할 숙소가 한 시간 반을 넘겨도 감을 잡을 수 없다. 굽이 굽이 도는 영국 시골길을 헤매다보니 카프카의 ‘성’이라는 소설이 떠오른다.

‘이러다 못가는거 아녀?’

이미 진통제 효과는 떨어져 벌써 두 알은 먹었어야 함에도 약 먹을 정황도 없다. 아침부터 두 끼를 굶은 탓에 머리도 혼미하다. 배가 고프면 어지러움증이 있는데 아더왕 혼령에 씌웠는지, 영국 도깨비들 장난에 놀아나는지 그 어지럼증에 차멀미까지 겹쳐진다. 결정적으로 네비게이션은 길조차 없는 곳으로 자꾸 방향을 잡는다.

‘워매 환장하것네.’

아비는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둘 째 놈은 운전석 옆에 앉아 인터넷 게임을 하고 있다.

“야, 너 그거 안꺼”

여행을 떠나기전 이번 여행길에 절대로 아이들 혼 안내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결국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낙천주의자? 우끼고 자빠진 김미화가 아니라 박운택 본색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카멜롯의 비밀

예정보다 한 시간 가까이 넘겨 겨우 도착한 호텔, 그런데 호텔 앞마당에 즐비한 값나가게 생긴 차들을 보니 ‘이거 잘못온거 아녀?’

호텔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CAMELOT 이라 써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아이들은 벌써 가방을 매고 끌고 호텔 안으로 달려간 뒤였다. 바람이 세게 분다.

반갑게 맞아주는 호텔 프론트 아가씨 이름이 ‘아가씨’던가 ‘아가사’던가. 숙박료를 확인하고는 겨우 안심이 된다. 아빠 손에서 룸키를 가로챈 아이들이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아이들이 엄마없이 하는 첫 여행입니다.” 마크라는 지배인에게 별중맞은 아이들을 변명하느라 꺼낸 첫 인사말이다.

호텔 벽면에는 호텔에 머물렀던 유명인들 사진이 그득히 걸려있다. 게 중에는 알파치노와 니콜라스케이지도 있다. ‘흠…’

호텔 로비 중앙에는 큼지막한 원탁이 놓여있다. 그 때서야 카멜롯이라는 이름이 연상된다.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아더왕의 탄생한 곳으로 알려진 카멜롯…캬….이 호텔이 영국인이라면 한번쯤 머물고 싶다는 바로 그 호텔인겨? 예약할라믄 몇 개월씩 걸린다던…?

원탁을 감상하다가 그 위에 펼쳐진 신문에 눈이 간다. 큼지막한 그림 사진과 그 그림을 그린 화가쯤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실려있다. 뭐여, 이거, 살아있는 사람 그림 한점이 1억이 넘어? 잉? 뭐야. 그러니까 원 포인트 투 밀리온 파운드? 일억이 아닌, 20억? 황당한 내 표정에 호텔 지배인이 웃으며 다가온다. 그의 말인즉슨 이 화가 스투디오가 이 호텔에 있으니 내일 시간되면 둘러보라는 뜻인데…그림 한 점에 20억이 넘는 화가, 니콜라스케이지가 자가용 비행기타고 와서 그림을 사갔다는 영국 최고가 화가와 내가 무슨.... 대충 대답하고는 방으로 오르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아이들은 호텔이 맘에 드는가보다. 각자 침대를 정해 몸을 던져 쿠션을 확인하더니 시키지 않아도 샤워를 한다고 법썩을 떤다. 늦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들을 방으로 올려보내고 혼자서 호텔을 감상하러 나서본다.

어둠 속 호텔은 고즈녁하다. 한가한 철이라 손님도 그리 많지않아 보인다. 어둠을 배경으로 한 호텔 사진을 두어 장 올려찍고 바람을 피해 방으로 돌아온다. 오늘 하루가 피곤했는지 아이들은 곧 잠에 빠져든다.

싱글 침대에서 혼자서 처음으로 잠을 자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막동이가 한 밤중에 아빠를 조용히 부른다.

“아빠.”

“응” 잠이 들어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과 동시에 몸을 일으킨다. 워낙 조용히 부른 까닭에 잘못들었나 싶었다.

“아빠, 엄마 언제와?”

“응, 우리 내일 갈거야.”

늦게 먹은 저녁에 갈증이 나는지 물을 마시고는 다시 제 침대로 기어오른다.

“아빠랑 잘래?”

“아니”

새벽 5시 경에는 옆에서 자고 있던 영웅이가 코피가 난다며 잠을 깨운다. 샤워실에서 코피를 닦고 온 녀석이 엄마한테 가자고 울먹이다 금새 잠이든다.

 

두꺼운 영국의 커튼 사이로 빛이 새어든다. 아침이 온 모양이다. 비몽사몽 커튼을 제끼고 창문에 서린 물기를 닦아낸다.

“….”

급히 커피가 땡기는 순간이다. 커피포트에 물을 채워 코드를 꽂는다. 의자를 둘려놓고 창 밖풍경을 감상한다. 언제나 늘상 보아온 것이 아닌, 상상을 불러오는 그것을 참 오랫만에 보는 느낌이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나를 올려본다고나… 이 호텔이 절벽위에 세워진 것을 그 때서야 알았다.

막내가 가장 먼저 눈을 뜬다. 그리고는 창 밖을 보더니 소리친다.

“씨… 더 씨”

“바다라고? “ 둘 째와 세 째가 영광이 소리에 잠을 깨서 창가로 달려온다.

“히야…”

이 풍경 하나로 이번 여행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것으로 간주함.

호텔 식당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또 다른 모습이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식탁에서 사진을 찍었으나 바닷가 절벽 모습이 잡히지 않는다.

잉글리쉬 브랙퍼스트로 아침을 마친 아이들은 밖으로 뛰쳐나간다. 이미 식사를 끝낸 숙박객들 또한 가벼운 차림으로 아침 산책을 떠난다.

천천히 아침을 비운 나도 호텔 뒷뜰로 나선다. 담배는 이럴 때 피우라고 있는 것…가능한 느리게 담배를 말며 바닷가 풍경에 취한다. 아더왕 성이 있었다는 절벽 모습이 꼭 사람의 옆모습 빼다 박았다.

전형적인 영국식 매부리 코에 의지가 강해 보이는 찢어져 올라간 눈, 왼 쪽 눈 두덩에 커다란 점,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는 듯 조금 벌려져 있는 입, 앞으로 쏠린 턱수염….전설 속의 아더왕 모습이 저런 모습 아닐까…산책을 즐기고 있는 노부부에게 절벽 바위를 가리키며 아더왕을 보라고 했더니 노부인이 깜짝 놀라며 남편을 잡아끈다. 내가 느낀 감상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노부인을 보며 후세 사람들이 일부러 바위 모양을 저렇게 만들어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멀리 아이들 사진을 카메라로 담으며 카멜롯 풍경에 빠져든다. 영국에서 귀하디 귀한 화창한 봄 날씨에 스치는 사람들마다 날씨에 대한 칭찬들이 노래처럼 들린다. What a wonderful day!!! 노래 제목이 그대로 맞아떨어지는 풍경이다.

“내일부터는 날씨가 엄청 추워질 것이라던데 오늘을 푹 즐기세요.” 경쾌해 보이는 중년 신사가 살짝 모자를 들어올리며 봄 빛에 취한 나를 깨운다.

호텔 커피룸에 들어서자 아가사라는 폴란드 아가씨가 커피를 내온다. 바닷가 산책을 떠난 아이들은 돌아올줄 모르며 혼자 남겨진 아빠는 하루를 더 머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다.

테드 스투어톤과의 만남

산책에서 돌아온 영웅이가 아빠가 보고 있던 신문 속 그림을 가리킨다.

“아빠, 여기 카메롯이라고 써있어.”

“?”

인상파 기법으로 그려진 사진속 그림 풍경은 큼지막한 호수에 물 그림자가 비쳐있다. 그 그림자가 영웅이가 보기에는 글씨로 읽혀지는가보다.

아이들이 샤워를 하러 방으로 올라간 후 영웅이가 지적한 부분을 곰곰히 생각해본다. 사립학교 유치원을 2년 동안 다녔어도 알파벳도 못읽고 숫자도 못샌다고 지적하자 학교 이사장이 “저 나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 다쳐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그림 그리기와 놀기가 가장 중요해요. 그림을 즐기고 감상하는 것을 배우기 전에 글씨를 배우게되면 상상력이 자라는 것은 힘들어요”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영웅이가 사물의 전체를 바라보는 깊이에 가끔 속으로 놀랄 때가 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하이데거 말을 이제는 버릴 때가 된 것인가.

머리를 시원하게 밀어붙인 사람이 악수를 청해온다. 어젯밤 사진 속으로 본 바로 그 화가다.

“가족과 여행한다고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뵙게돼서 저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 속에 글씨가 들어있는게 맞습니까?”

마땅히 나눌 말이 없어 영웅이가 지적한 부분을 가리켰다.

“카멜롯이라고 써 있다고 아들이 그러던데...”

“몇 살입니까? 아들이” 테드가 놀라는 표정이다.

“여섯 살, 다음 달이면 7살 됩니다.”

“천재 아들을 둔 것을 축하합니다. 당신 아들을 보고 싶습니다.”눈 빛이 심각하다.

호텔 지하에 스투디오를 둔 테드는 그곳에서 [light Box]라는 특별전을 하고 있다. 아이들이 스투디오 구경에 별반 흥미가 없을 것 같아 나만 혼자 둘러봐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궂이 아이들도 같이 봐야 한다고 한다. 혹 어린 아이들이 스투디오에서 말썽이라 부릴까봐 나만 둘러보는게 낫다는 생각인데 한 시간 가까이 아이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려준다.

떠날 채비를 갖추고 아이들이 내려오자 테드가 그들을 앞세우고 지하 스투디오로 안내한다. 간단한 주의사항이 아이들에게 일려지고 본격 스투디오 구경에 앞 서 테드가 작품 몇 점을 가져온다. 아이들에게 선물할 것이라는 말에 아이들 입이 벌어진다. 세 명 모두 한 점씩 선물을 건네 받는 모습에 감사의 말도 잊어버렸다.

[light box]라는 특별전과 관련한 기사를 아침 식탁에서 읽었던 내용이 떠오른다. 특별전을 알리는 광고에서 언급된 대로 가장 아름다운 미적 경험 어쩌구 하는 것이 다 과장된 표현이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빛의 상자] 전시가 시작되려는 순간 호흡이 멈추어졌다. 전등이 꺼지자 스투디오는 깜깜한 어둠에 쌓인다. 유리창 틈새로 들어오는 깨알같은 햇빛이 창문에 칠해진 붉고 푸른 색에 따라 어둠 속 별처럼 빛이 난다. 창조전 암흑의 우주 공간에 던져진 듯한 기분이다. 그토록 부산하던 아이들마져 숨을 죽인다.

거기까지는 공연장 배경이고(오늘 같이 햇살이 강렬한 날씨에서나 이런 특별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다)…본격 테드의 공연이 시작된다. 말 그대로 빛의 상자를 통해 우주가 열리는 순간이다. 어제 에덴프로젝트를 방문해서인지 에덴동산이 연상된다. 그림 중앙에 비춰지는 두 사람이 아담과 이브의 탄생처럼 보인다. 천지창조를 보는 느낌이다. 그림이라는 평면에 그려진 작품이 빛을 통해 우주 공간에서 입체화되는 것을 아이들과 나는 영원히 잊지못할 순간으로 경험하였다.

‘이 빛의 박스를 감상하기 위해 지구 반대 편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온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빛의 박스 전시 작품을 고확대경을 대고 아이들에게 한 명 한 명 보여준다. 미새한 그림 바탕에 사람들의 그림이 숨겨져 있는게 보인다.

‘이 그림은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 ‘ 잘못들었거니 했다. 그래서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작품 하나가 20억에 팔리고 있는 생면부지의 화가가 저 대작품을 나에게 줄리는 없지. 영어공부좀 열심히 해야겠다.라며 로비로 올라오는 중 테드가 아이들에게 선물한 작품들과 조금 전에 빛의 박스에서 전시했던 작품을 들고 온다.

‘익?’ 아까 들었던 말이 잘못 들은게 아니었어?’

작품 뒷면에 자신의 그림 그리는 모습과 우리 가족 4명의 얼굴을 그려주는 테드의 모습에서 나와 아이들은 말이 없다.

그 구도자 같은 테드의 모습이 나와 아이들 기억에 오랫도록 잊혀지지 않을 듯 하다.

테드와 기념사진까지 찍고 카멜롯과의 아쉬운 작별을 한다.

돌아오는 길

“또 올까?’

“아니, 너무 멀어, 투 파뤄웨이” 영웅의 대답이다.

이번 여행은 1박 이라는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기억되는 순간들로 채워져있다.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있게해준 카메롯 호텔의 아가사, 칼, 그리고 마크 메니저와 스탭진들, 그리고 호텔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두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인연들과 이틀간 환상적 날씨를 선물해준 그 분께 항상 감사한다.

 ‘인간은 구체적 언어를 통해 꿈꾼다.’는 가스통 바슐라르의 말이 테드 스투어톤이라는 화가를 통해서는   ‘인간은 빛을 통해 꿈꾼다.’를 체험한,  짧고도 긴 여행의 여행기 끝 문장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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