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박운택 기사입력  2013/02/05 [19:55]
칸트, 괴테 그리고 모차르트와의 인터뷰
18세기 격동의 시대를 살다간 최거장들과의 대담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류문명사에서 시간여행을 가라 하면 어떤 시대를 택하시겠습니까? 저는 감히 18세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격랑의 시기를 간직했으며 현 21세기의 토대가 된 예술과 문학, 철학의 원조들이 숨쉬고 있는 까닭입니다. 이번 [영웅들과 차 한잔]에는 각각 동떨어져 보였던 각분야 최고의 사람들을 함께 초대하였습니다. -템즈- 
 
 
임마누엘 칸트(1724-1804)     © GoodMorningLonDon
 
템즈: 한 시대의 거장들을 이렇게 한자리에 모시게 된 것이 가상 인터뷰 사상 초유의 일이 아닌가 합니다.
우선 가장 연장자이신 칸트(1724-1804)교수님께 묻겠습니다. 칸트교수님의 철학이야 말로 세계 모든 법치국가의 뿌리가 되고 있는데요. 기존 여러 학자들이 전해주는 내용은 워낙 어려워서요. 저처럼 단순한 사람들에게 간단명료하게 설명해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칸트: 학문이라고 불러지는 것들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겁니다. 단순 명쾌한 저의 철학이 학자들의 복잡한 머리를 거치면서 일종의 지적 유희가 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 입니다만 여러 사람들에 밥벌이가 되어준 것으로도 존재가치는 있는 것 아닐까요? ㅎㅎ ... 제 철학은 간단 합니다. 도둑질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성경에 쓰여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기준으로 볼 때도 나쁘다는 것이지요. 신적 기준에서 인간적 기준으로 말 그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봐야지요.
 
템즈: '자연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복잡하고 거대한 기계'라고 생각한 뉴턴의 자연관이 교수님께 영향을 준 것으로 아는데요. 독신주의자였던 뉴턴처럼 교수님도 독신을 고집한 것을 보면 학문적 영향뿐 아니라 삶의 지표역할도 했으리라 봅니다만...
 
칸트: 뉴턴의 만유인력이나 다른 과학분야에 흥미를 가진 것은 사실입니다. 저 또한 그런 과학적 탐구에 몰두했었고 과학에서 학문적 성과도 올렸지요. 다만 저나 혹은 뉴턴 선배의 독신주의자로의 어떤 연관은 성경에 기초한다고 봐도 좋을 듯싶습니다. 뉴턴 또한 성서연구가로서 그 생애가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템즈: 올 해 칸트님의 서거 200주년 기념식이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고향이며 오랫동안 교수로 강단에 섰었던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이 교수님 이름을 딴 '러시아 임마누엘 칸트 대학'으로 바뀌었는데 교수님 고향이 독일에서 러시아로 변한 것에 대한 소감은?
 
칸트: 한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군상들이 그 시대만을 고집하는 게 문제지요. 제가 살던 시대 또한 국가간 분쟁이 심했는데 200년이 지난 지금은 더 악화된 듯 보입니다.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템즈: 제 개인적으로는 21세기의 인문과학은 이미 숨을 거뒀다고 봅니다만....
 
칸트: 일시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강의하던 시절 프랑스 혁명이 있었어요. 프랑스 혁명이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꽃을 피우지 못했으나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새롭게 인류의 역사는 시작되었지요.
 
템즈: 제가 이렇게 세 분을 한꺼번에 인터뷰에 초대한 것도 그 부분인데요. 프랑스혁명이라는 인류역사상 대변혁의 시대를 살았던 분들로서 어떻게 그 혁명을 보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칸트: 까마득한 후배인 솔제니친이 1998년인가 9년인가 파리에서 '역사상 인류의 혁명은 무가치한 것이라'라고 했지요? 저는 그렇게 보질 않습니다. 인간의 행동들 가운데 무가치한 것은 없지요. 다만 그 이용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달리 보일 뿐 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아닌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유의지의 인간이 어떻게 사회를 영속시켜 가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탐구 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 합니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 ©GoodMorningLonDon

템즈: 프랑스 혁명에 대해서 괴테선생의 견해를 듣고 싶군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몇 해 전인가요?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때가?
 
괴테: 1786년 9월이었죠. 뭐 거창한 역사적 소명의식이나 철학적 탐구가 목적이 아니라 어쩌면 도피여행일 수도 있었어요. 불혹을 앞둔 사내의 마지막 시도라고나 해야 할까요? 당시 유럽은 급격히 변하고 있었습니다. 산업혁명을 태동시킨 영국의 경험적, 과학적 학문과 그 것을 바탕으로 한 영국의 문학 등...그 동안 제가 독일에서 누린 명성이 우물 안 개구리로만 보였습니다. 지금 시도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을 내 노년의 삶이 한 장의 그림처럼 그려졌지요. 그것은 죽음보다 무섭게 저를 엄습했습니다. 프랑스 혁명이 외부적 변화였다면 저의 이탈리아 여행은 내부적 혁명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저 자신의 미래를 발견했다 할까요...
 
템즈: 칸트님과의 대화에서 제가 '21세기의 인문과학은 죽었다.' 라고 좀 과격한 표현을 썼는데 괴테님께서는 어찌 보시는지요?
 
괴테: 21세기에 죽은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죽었다고 보는 사람을 많았어요. 그러나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등 인간의 궁극적 해방을 주도한 것은 인문과학이었습니다. 21세기들어 문명의 충돌로 야기된 인문과학의 죽음은 다시 재탄생 해야 하는 개기가 될 것 입니다. 형식이나 내용이 바꿔질 수는 있겠지만....
 
템즈: 나폴레옹 황제가 괴테님을 만났을 때 "여기 인간다운 인간이 있다"라는 말을 했는데 괴테님이 볼 때는 나폴레옹 황제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괴테: "황제다운 황제가 있다." 라고 할까요? ㅎㅎ
 
템즈: 인간과 황제의 다른 점은 감정의 표현에 있지 않나 생각 합니다. 나폴레옹이 정복욕의 화신이라면 괴테님이야 감정절제의 대가 아니었습니까? 님의 많은 작품에서 보여지듯이...
 
괴테: 여기 계신 칸트님이나 다른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저 스스로 어떤 형식에 구애 받았다고는 보질 않습니다. 다만 제 평생 우주의 신비와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그것이 감정 절제의 대가라고 보신다면 할말 없겠지요. 감정 표현에 대한 질문은 오늘 저와 함께 이 자리에 초대받은 모차르트에게 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파르트(1756-1791) ©GoodMorningLonDon

 
 
 
 
템즈: 괴테님과 모차르트님은 만난 적이 있었지요?
 
괴테: 모차르트가 7살 때 만났습니다. 제가 14살 때 ..
 
모차르트: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을 때일 겁니다.

괴테: 맞아. 자네가 앙트와네트 공주에게 청혼을 해서 웃음바다가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지 .
 
모차르트: 마리앙트와네뜨가 저와 결혼했다면 아마 세계사가 다시 쓰여져야 할 지도 모르지요. 루이16세에게 시집가서 프랑스혁명 때 처형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고요. 흠...
 
템즈: 뉴욕비평가 협회는 모차르트선생의 [피가로의 결혼]을 지난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 선정했었는데요.
 
모차르트: 예술 작품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우습지만...우선 피가로의 결혼이 왜 뽑혔는가 하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게 좋을 듯싶네요. 프랑스 작가인 보마르세의 [세빌리아 이발사]의 후속편이 [피가로의 결혼] 입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인 요제프 2세는 자신의 여동생 마리가 시집가 있는 프랑스의 소식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귀족들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그와 같은 희극을 오스트라이아서는 금지했었고요. 저는 황제가 금지한 희곡에 곡을 썼지요. 저를 주제로 한 영화[아마데우스]에 그 대목이 잘 묘사돼 있습니다. 뉴욕비평가들이 굳이 [피가로의 결혼]을 선정한 것은 그러한 역사적 맥락에 근거한다고 봅니다.
 
템즈: 그럼 모차르트님은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할 때 사회적 분위기에는 관심이 없었나요?
 
모차르트: 어떤 사람도 사회와 동떨어져 사고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유럽 곳곳을 여행한 까닭에 그 분위기에 더 민감했다고 봐야지요. 물론 제가 연주회를 한 곳이 대부분 궁중에서였지만 당시 유럽의 상황은 뭔가 화산을 터트릴 기세였습니다. 물론 그 변화의 근저에는 미국의 독립이 한몫을 했고요. 미국의 독립전쟁에서 돌아온 프랑스 군인들이 사회적 개혁을 누구보다 갈망 했던 게 사실 입니다.
 
템즈: 모차르트님이 이탈리아의 베르디처럼 혁명적 음악을 작곡했다고 들릴 수도 있겠군요. ㅎㅎ
 
모차르트: 제 고향 짤쯔에 가면 짤쯔강이 있어요. 뿌연 석회수가 힘차게 흐르는 강물을 보고 있노라면 악상이 저절로 떠올랐지요. 다리 기둥에 부딪혀 흐르는 강물은 끊임없는 음표를 만들어내고요.
음악이든 혁명이든 혹은 철학이든...인류의 역사는 해방이 아닌가 합니다. 악에서 혹은 속박에서 저주에서 고난에서 가난에서....


템즈: 저도 짤쯔강을 보면서 교향곡을 떠올렸습니다. 이제 세 분께 가벼운 질문을 드리는 걸로 이번 인터뷰를 마칠까 합니다. 이곳 로마에서 모차르트님은 1770년에 교황에게서 황금박차훈장과 기사작위까지 받았는데 어떻습니까? 당시와 비교하면?
 
모차르트: 워낙 어릴 때라 제대로 여행을 즐기지 못했어요. 다시 기회가 온다면 어여쁜 이탈리아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그런 곡을 써보고 싶군요. 아님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의 음악을 작곡했던가...사랑보다 더 소중한 것은 인생에 무엇이 있을까요?..
 
템즈: 괴테님은 이탈리아를 다시 돌아본 소감이?
 
괴테: 제가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마차를 이용했지요. 몇 주가 걸린 여행길이 이젠 몇 시간이면 도착하니...

칸트: 빠르다고 좋은게 아닙니다. 그만큼 여유가 없어지지요. 자 이제 기차 타고 폼페이 구경이나 하러 갑시다. 템즈 덕분에 로마구경까지 왔으니 휘휘 둘러보고 가십시다 후배님들...
 
템즈: 많은 여행객들이 여행을 하면서 절실히 느끼는 것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입니다. 철학과 음악, 문학과 미술 등이 함께 어우러진 인류의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는 참 맛이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합니다. 
 
(본 가상 인터뷰는 2007년 로마 여행 중 작성된 것 입니다.-박운택)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GoodMorningLondon의 모든 기사는 출처 명기시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광고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포토뉴스

이전 1/36 다음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