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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으로 해석한 大學 –聖經의 제사법과 일치

2500년만에 드러나는 대학과 중용의 비밀

박운택 | 입력 : 2011/10/12 [23:03]
왜 대학과 중용을 금문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제사장(아버지)이 신(神)을 들고 있는 가운데 두 손으로 술잔을 바치고 그 제단 앞에 아들이 절하는 것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 大學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가슴 뜨거워 하며 그러한 하나님께 무릎 꿇고 눈물로 용서를 빌며 희생양을 바치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바른 제사이다.]

이스라엘 족속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이야기가 아니라 대학 첫 문장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 在止於至善’ 을 금문으로 해석한 내용이다.

 
근 2500여년 동안 이 문장의 해석은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지극한 선에 머 무르는 데 있다.’라는 추상적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다.


대학과 중용의 역사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예기(禮記)] 49편 가운데 제 42편인 [대학(大學)]은 [예기]와 마찬가지로 그 작자가 명확치 않다. 다만 공자 사후 수 백년 동안 첨삭, 가필되어 오다가 진(), 한() 대에 이르러 그 내용이 출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중용(中庸)] 또한 [예기] 제 31편에 들어있던 것으로 사마천(司馬遷, B..C 145-B.C.86?)과 공영달(孔穎達, 574-648), 정현(鄭玄,127-200), 반고(班固,32-92) 등의 학자들은 그 작자를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로 보고 있으나 [중용]본문 제 5장 2절 ‘지금 천한의 수레는 궤폭이 같고 글은 문자가 같으며 행동은 같은 윤리를 따른다(今天下車同軌書同文行同倫) 의 기록을 들어 진(), 한() 시대의 작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공자가 예기를 편찬한 이유

공자는 주왕조 이후 변질되는 제사에 대해 그 방법만이라도 기록하고자 하였다. 공자 때에 이르러는 이미 제사의 핵심인 하나님 개념이 희미해지고 그 하나님 자리에 인간이 대치되고 있는 상황으로 하나님에 대한 제사 의미와 인간에 대한 제사 의미가 공존하고 있었다. 예기가 하나님과 인간(왕 중심)이라는 2중적 의미를 갖게 되는 이유가 거기 있다.

공자 사후 근 2500년 동안 인문과학, 곧 사람 (황제와 권력자) 중심으로 大學中庸이 해석되어 왔으며 해석자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통치철학으로써 공자가 의도했던 의미와는 전혀 관계없이 해석되고 편집되어 내려왔다.

대학과 중용이 중심으로 해석되어야 하는 이유.

공자는 방법마저 사라지고 있는 제사를 후세에게 전하기 위해, 인간 중심의 편의를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제사 방법 및 의의, 제사장의 자세에 관하여 禮記를 통해 기록을 남겼으나 후세 어용학자들은 공자가 사용한 글자들이 올챙이글자(과두문자)라 하여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말았다.

예기 가운데 [대학]과 [중용]은 추상적 개념을 구체적 그림으로 설명하는 장이다.

大學은 제사의 의의와 배우는 자의 자세를 설명한 것으로 피교육자에 해당하는 아들이 중심이 되며 中庸은 제사장의 역할과 제사를 아들에게 전수하는 아버지의 관점에서  교육 집행자의 자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예기의 많은 장들이 제사의 방법에 대해 객관적 사실들을 언급하는 반면 대학과 중용은 피교육자(아들)과 교육자(아버지-제사장)의 제사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다른 장들과는 달리 추상적 개념들이 그림글자를 통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본 연구는 대학과 중용 해석함에 있어서 위의 목적을 두고 해석한 것이 아니라 고문으로 해석하다 보니 그 결과가 나온 것임을 먼저 밝혀둔다

 
<제 1 편>


배울 –누가 무엇을 누구로부터 배우는 것인가


▲     배울 學의 金文과 甲骨文
배울 은 두 손으로 술잔을 거듭 올리는 모습과 그 제단 앞에 아들이 절하는 모습, 그리고 그 옆에 나무가지를 들고 있는 손의 모습이 합쳐진 글자이다.

상고금문에서도 간혹 생략되던 나무가지를 들고 있는 손의 모습을 살펴봄이 대학에 대한 해석의 첫 열쇠가 될 것이다.


칠 복()은 나무가지를 들고 있는 제사장을 의미


제사제(祭)자의 금문을 통해 칠 복(攴) 금문과 쓰임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해야 할 듯하다.
 
 

제사제()의 금문은 신을 나타내는 글자인 보일 시()와 신에게 올려지는 희생제물을 뜻하는 육달월()과 칠 복()으로 되어있다.

고기육의 금문

고기 육(肉)

  사람 안에서   으로 다른 사람  꺼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글자가 점점 단순해지며 ,, 등의 형태로 변화한다. 월(月) 구별하기 위해 육달 월이라 이름 붙이,고 한자 구성에서도 차이를 두었다.

육달 월(月)-(간 간), (돼지 돈), (어깨 견) 등 몸이나 고기와 관련돼 쓰이고 글자의 왼쪽이나 아래쪽에 쓰인다.

달 월(月)의 쓰임- (기약할 기), (아침 조), (바랄 망) 등 시간과 관련되어 쓰이고 글자의 오른쪽에 쓰인다.

 

제사상 옆에서 나무가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절하는 사람을 때리려 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될 것이 아님에도 칠 복 () 이라 불려지는 이 나무가지를 든 모습이 무엇인가를 때리려 한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온 것이 수 천년을 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다른 글자들을 통해 칠 복 ()을 좀 더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가르칠 교()에도  칠 복()이 나타나고 있다.

 
기를  

소나 양을 몰고 다니는 목동들이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있다고 해석하기 보다는 소나 양의 의미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 지를 추적하는 것이 복() 대한 깊은 접근이 것이다.

 소(牛)와 양(羊)은 제사의 희생제물을 의미

허신 [許愼, 30 ~ 124]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소(牛)는 일하다’라고 하였다. 송나라 초기 태종 웅희 3년 (986년) 황제의 명을 받은 서현(徐鉉)은 허신의 설문해자를 교정하며 소(牛)를 언급하길 ‘큰 희생물이다(大牲也.)’이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1780년에 시작하여 1808년에 완성한 <<설문해자주>>에서 단옥재[段玉裁, 1735~1815]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였다.

淺人(천인)들이 허신의 설문해자에서 언급한 ‘牛는 일하다.’라는 의미를 고쳐서 ‘큰 희생물이다(大牲也.)’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단옥재의 <<설문해자주>> 中에서

자신보다 근 천여년이 앞선 대학자인 서현,서개 형제를 지식이 얉은 자들이라 공박하며 ‘소(牛)는 큰 희생물이다(大牲也.)’라고 한 것을 단옥재는 오류라고 지적하였다.< 포정(庖丁)은 백정(白丁)인가>

단옥재는 금문에 등장하는 소 우(牛) 혹은 양(羊)이라는 글자의 씌임을 몰랐기에 위와 같은 주장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칠 복(攴)의 금문과 그와 결합하는 글자들을 알았다면 단옥재는 자신보다 뛰어난 대학자들을 淺人(천인)이라 부른 망언을 했을리 만무하다.

제사장()에서 아비부(父)로 변천

 
▲    낱 枚의 金文과 甲骨文
종이나 유리 등을 셀 때 사용되는 낱 매(枚)라는 글자의 금문들이다. 이 글자에서는 손으로 나무가지를 들고 있는 것이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나무가지로 때리기 위함이 아니라 J.G 프레이져의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 나오는 주술사가 들고 있는 나무가지가 이 글자에 대해 더 설득력있는 해석으로 보인다. 요즘도 한국의 무당들이 신내림으로 나무가지를 흔들고 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제사장이라는 위치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직계 자손인 아들에게 이어지듯, 神을 들고 있는 제사장을 뜻하는 칠 복(攴)이라는 글자 또한 아비부(父)로 연결된다.
▲    아비 父의 金文과 甲骨文
아비 父자가 손도끼를 들고 있다는 해석 또한 사람 중심의 해석이다. 신(神)을 뜻하던 나무가지가 좀더 단순해지며 때로는 그 나무가지가 굵고 크게 강조되는 것을 볼 때 제사장과 왕의 지위가 겸임되던 제정일치(祭政一致)사회가 점차 왕의 권력이 강해지며 왕위가 직계자손으로 세습되는 변환기의 시대임을 아비 父라는 글자의 등장으로 알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 在止於至善’에서 '學'이란 글자의 금문을 통한 해석은 '제사장(아버지)이 신(神)을 들고 있는 가운데 두 손으로 술잔을 바치고 그 제단 앞에 아들이 절하는 것'이 공자가 의도했던 에 대한 옳바른 해석이 될 것이다. 

 
제 2편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그림으로 그리라면 어떻게 그릴 것인가>가 연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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