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너
박필립 기사입력  2016/04/05 [20:07]
Warrior queen (2003)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민으로 살 것인가
박필립의 영화로 읽는 영국사 제 1편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Warrior queen (2003)  :2003년 9월, iTV에서 제작 방영한 영화. 여전사 보우디카
  영국 여배우 알렉스 킹스톤이 주인공 보우디카 여왕을 맡았고, 갈수록 그 주가가 치솟고 있는 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가 보우디카의 딸인 이졸다(Isolda)역을 맡았다.  

 

브리튼은 그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용맹한 전사들을 배출하여 왔다. 그 가운데 잊힐 수 없는 한 여전사가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바로 보우디카 여왕(Queen Boudica)이다.

 

BC55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브리튼 정복에 군침을 삼키며 침공했으나 그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 브리튼인들의 맹렬한 저항과 날씨까지 비협조적으로 나와 첫 상륙에 완전 스타일을 구긴 카이사르는 이듬해 다시 첫 원정의 두 배가 넘는 병사를 몰고 재차 침공한다.

 

세계 최강 로마군을 맞아 브리튼은 카시벨라우스를 총사령관으로 삼아 저항에 나섰으나 중과부적, 결국 타메시스(템즈)강변의 전투에서 참패했다. 그러나 카이사르의 두 번에 걸친 브리튼 침공조차 로마에 세금을 내는 선에서 끝나고, 로마가 혼란한 틈에 그 세금마저 브리튼인들이 묵살하자 로마의 브리튼 침략은 먹잘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 후 거의 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로마 황제 자리에 오른 클라우디스는 몸소 4만의 정예군을 이끌고 브리튼 정복 사업에 뛰어든다. AD 44년 코끼리를 앞세운 클라우디스 황제는 콜체스터를 입성하는 것으로 황제의 위엄을 브리튼이라는 섬나라에 떨치기 시작한다. 

브리튼 부족들의 맹렬한 저항조차 무적 로마 병사의 거칠 것 없는 진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북쪽과 서쪽으로 계속해서 뒷걸음질해야만 했다. 이러한 브리튼인들의 저항 의지를 아예 꺾어버릴 심사로 로마군은 대량학살과 초토화 작전을 구사했다.

 

로마군 브리튼 공략지도 -카이사르 정복 시도 이후 근 백년이 지난 AD43년 클라우디스 황제가 친정에 나선다.

 

이 당시 잉글랜드 동쪽(지금 켐브리지 위쪽 노르윅 근처)에 아이시나이(Iceni)부족의 여왕 보우디카는 그의 남편인 프라스타구스 왕과 함께 그 왕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인 프라스타구스는 로마와 외교적 줄다리기로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그의 사후, 로마의 브리튼 현지 사령관의 속주세 변경으로 인해 그동안의 평화는 깨지고 만다. 속주세와 관련해, 당시 로마에서 건너온 고리대금업자들이 로마군들의 비호하에 일으킨 피해가 극에 달하자 당연히 브리튼인들의 저항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성질 괄괄한 보우디카가 호락호락하게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로마의 식민지 관리들은 그녀을 매질하고 딸들까지 겁탈하여 아예 저항 의지를 꺾어버리고자 하였다. 다른 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식민의 상태에 놓인 민족들은 예나 지금이나 노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압제가 심할수록 그 저항은 강력해지는 법, 결국 소수 부족들이 보우디카를 중심으로 들고 일어서자 그 기세가 사뭇 장대했다. 클라우디스 황제가 코끼리를 앞세우고 입성했던 콜체스터를 불태우는 것으로 시작한 식민부족들의 성난 파도는 로마와 기타 도시들까지 잿더미로 만들었다. 

 

전쟁 초기, 브리튼인들의 게릴라식 공격에 맥을 못 추던 로마 병사들이 점차 전열을 갖춰 대응하기 시작했다. 로마 병사들이 싸우기에 유리한 지역으로 군대를 후퇴시킨 수에토이우스 총독은 보우디카를 잡을 생각에 골몰하였다. 만 명의 군대 가운데 14군단을 핵으로 한 대회전이 AD 61년 지금의 맨체스터에서 치러지게 된다.

 

보우디카와 그녀 딸들은 전차를 타고 브리튼 병사들을 독려했다. "싸워서 이길 것인가, 멸망할 것인가. 노예로 살 것인가, 자유민으로 살 것인가."를 외치며 전장을 누볐다.

 

브리튼 연합군들이 공격진용을 갖추자 로마 군대는 방어대형을 취했다. 숫자적 우세만 믿고 달려드는 브리튼 병사를 정조준한 로마의 수천명의 중무장 투창병들에게 일제사격이 떨어졌다. 숨 쉴 틈 없이 두 번째 일제 투창 공격이 감행되자 경무장 브리튼 병사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전투개시 후 몇 분 만에 브리튼 쪽에는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브리튼 대군을 향한, 단검 무장 로마병들의 밀집대형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들의 단단한 방패와 갑옷은 브리튼인들의 장검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더구나 전쟁터마다 식솔들을 데리고 다니며 그들을 후방에 배치한 탓에 후퇴조차 할 수 없었다. 진퇴양난에 빠져있는 브리튼 병사들을 향한 철갑 로마 기병들의 마지막 타격에 의해 멘체스터 평지는 피바다로 변해갔다.

 

역사학자인 타티우스는 이날 대회전에서 약 8만 명의 브리튼 병사와 여자들과 아이들이 죽었고, 이에 비해 로마병의 손실은 400여 명의 사망에 지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투현장을 탈출한 보우디카는 사로잡히는 것을 피하고자 자살한 것으로 들려지고 있으나, 그녀의 용기를 잊지 않기 위해 브리튼인들은 그녀가 특별히 안전한 곳으로 피했다는 전설을 남겨두고 있다.

 

  © GoodMorningLonDon

1902년, 보우디카 여왕을 기념하기 위한 청동상이 로마의 브리튼 수도였던 현 국회의사당 템즈 강변에 세워져 있다. 그녀의 딸들과 함께 보우디카는 자유를 위해 저렇게 싸웠다.  (Thomas Thornycroft 作)

 

영화는 역사를 바탕으로 꽤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영화바로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GoodMorningLondon의 모든 기사는 출처 명기시 무단전재 및 재배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광고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포토뉴스

이전 1/36 다음
광고
광고
주간베스트 TOP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