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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표 퇴진 스스로도 못하는 문재인, 숨통을 쥐고 있는 이병춘 사진

박필립의 퍼즐게임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5/12/04 [21:24]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당의 존망 앞에서도 당 대표 불퇴진을 천명하고 나섰다.  당 대표 취임이후 문 대표가 지휘하는 선거마다 몰패를 당하면서도 지휘부 누구하나 책임지려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급기야 문재인 대표에 대한 흔들기가 시작되고 안철수의 최후 통첩을 거부함으로써 새민련 최대주주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대표가 당의 존망을 내팽게칠 정도로 권력욕이 있는가 하는 것이 작금 상황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것이다.

2002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씨로부터 부산 광역시장 출마 권유에도 한사코 거부했던 문재인은 노무현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참여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의 민정수석을 맡게된다.

 

당시 문재인씨의 권세를 표현한 단어는 ‘왕수석’이었다. ‘왕수석’ 문재인씨는 전 정권인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대북관련 사업을 들춰내는  ‘대북특검’을 주도하기에 이른다. 결국 DJ를 잡기위한 그의 몸부림은 DJ 대신 DJ수족이었던 박지원을 구속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노 대통령이 부탁할 때는 거절하더니, 노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주변 여건이 좋아지자 사상 지역구에 출마했다” –조경태

“저는 지역주의 청산을 위해 경남에서 8번 출마했지만, 문재인 후보는 총선 전까지 출마 권유를 거절했다”-김두관

 “정치는 원칙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대단히 강인한 능력과 개인기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끝내 좌절했던 것 아니냐. 저는 도저히 엄두도 못 낼 일이다.”-문재인 (2010년 6월)

 

권력의지가 빈약했던 문재인이 하루아침에 당의 존망보다 자신의 권력욕이 앞서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답은 의외의 곳에서 발견된다. 문재인이 정치인, 그것도 야권을 대표할 거물급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하루아침 일이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 어떤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았는가.’ 라는 것은 수사의 기본 원칙일 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문제 접근 기초 방식이다. 

퇴임한 대통령의 집사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이 주군의 죽음 이후 하루 아침에 권력의 핵으로 떠오른다? 당연 그의 행적 또한 수사 대상이 되어야 했다.

 

2009년 5월 23일 , 토요일 . 이  날은 권양숙 여사가 검찰 조사를 받는 날로, 노 대통령 비리와 관련한 조사로 몇 달 동안 북적대던 보도진들이 더 밀려들었어야 함에도 이 날따라 한 명의 보도진도 그의 사저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노 대통령의 최후 순간을 동행했다는 경호원의 진술과 컴퓨터에서 찾아냈다는 유서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로 증명되는 유이한 것이었다.

 

컴퓨터에 쓴 유서는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법조인 출신의 노무현 대통령과 그가 컴퓨터에 남긴 유서 한장만 달랑 들고 서둘러 주군의 죽음을 자살이라고 발표한 역시 법조인 출신의 문재인...그리고 최후 순간 유일한 동행자였던 이병춘 경호관의 4차례에 걸처 번복되는 진술. 

사건 발생 열흘 후인 6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부엉이 바위에서 현장검증이 있게 된다. 이 날 현장 검증에는 5월 23일 대통령을 경호했던  단 한 사람, 이병춘 경호과장이 등장했다. 

 

수 차례 그의 번복된 진술은 이미 당시 여러 언론들에서 앞다퉈 보도된 바 있으나 현장검증 당시 등장한 인물이 대통령을 최후 동행했던 이병춘 경호과장이 맞는가 하는 부분은 의심조차 갖지 못했다. 왜냐하면 바로 현장검증 당시 문재인이 이병춘 옆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이 매일 매 순간 얼굴을 맞댓을  경호과장을 못알아볼 수가 없다라는 보증이었다. 

 

만약 이 날 현장검증에 나온 자가 이병춘이 아니라면?

좌측 이병춘 경호과장이 우측 노무현 대통령 대역의 팔을 잡고 현장검증을 하고 있다. 중앙이 문재인 참관인    <연합뉴스 사진참조>
26일 봉하마을로 향하는 이병춘 경호과장 모습    <동아일보 참조>

 

 

     




 

 

 

 

 

                      

 

좌측 -당시 46인 (64년생) 이병춘 경호과장의 손과 우측 상 -현장검증 중인 이병춘 경호과장 손 모습. 우측 하 -20대로 보이는 현장검증 중인 이병춘 경호과장.

현장 검증중인 이병춘 경호과장
20대로 보이는 이병춘 경호과장의 걸음걸이
 호리호리한 몸매의 이병춘 경호과장이 머리에서 피가 철철나는 노무현 대통령을 응급핼기조차 부르지 않고 저런 자세로 들처매고 내려왔다라고 현장에서 대역을 써서 증언하고 있다.

 

귀에 무전기 리시버를 꽂고 대역을 하고 있는 이병춘 경호과장.  노무현 대통령 실종이후 무전기 1회 핸드폰 통화 3회라고 증언하고 있으나 모두 지워진 상태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면 당연 두 다리와 척추가 심한 복합골절을 당했어야 함에도 두 다리는 멀쩡했다?  이러한 의문들을 파악하고 있던 경찰마저 국과수나 부검의를 부르지 않고 서둘러 시신을 화장했다. 유족의 동의라는 이름으로...

 

엠블런스가 아닌 일반 승용차에 응급한 대통령을 실고 달리던 톨게이트 사진. 앞 좌석에 운전수 1인과 뒤좌석에 노대통령을 부축한 경호원 1인이 탑승했다는 진술과 달리 운전석 옆에도 누군가 타고 있었다. 차 창밖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는 듯한 노무현 대통령의 팔이 보인다. 이 팔마저 나중에 경찰봉으로 포토샵 처리된다. 

 

 

이병춘이 노무현 대통령의 행방을 잃고 무전기로 수 십명의 사저 경호원들에게 비상을 걸지않고 핸드폰으로 비서관 한 명만 불러낸 이유는?


"놓쳤다." 

 

자신이 경호하는 대통령님에게 동물 사냥하는 추적용어를 쓴다? 대체 잃어버린 30분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쫒겨다녔다는 말인가. 그 마지막 현장 증언을 노무현이 가장 신뢰했던 문재인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으며 그는 이제 대권을 노리는 거물이 되었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작은신문입니다. dlf 15/12/07 [03:24]
http://www.yejeol.com 인터넷 작은 신문 많이보세유... 수정 삭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재수사해야 한다. 17/02/14 [22:48]
문재인 최측근 노영민에 의하면 참여정부의 95% 업무를 문재인이 처리했다고 한다. 95%면 거의 다 장악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노무현 서거 몇달전 노통이 한창 시달리는 시기에 문재인은 박근혜 최측근 서청원의 공천헌금 수수 혐의의 변호를 맡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뜸하다가 희한하게 서거 당일날 불쑥 나타나서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을 했다는 발표를 한다. 이건 다 사실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만 엮여저 있다. 노통의 서거 정황을 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들이 많다. 나는 원점부터 재수사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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