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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걸리면 이렇게 끝장난다.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5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5/07/25 [18:23]

삼성에 걸리면 이렇게 끝장난다.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5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5/07/25 [18:23]

기업사냥 시나리오

앞서서 이야기 했듯이 인젠트의 이 대표는 얼라이언스시스템에게 대량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등기이사이였다. 그는 나의 전 직장의 상사였고 서로가 호의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터라서  2004년 가을 무렵 이런 협의를 했었다.

“이 사장님, 삼성SDS와의 법적 공방으로 회사 형편이 좋지 않습니다. 회사의 운전자금이 필요한데요, 곧 추진될 국민은행 대규모 프로젝트에 납품될 엑스톰 제품에 대하여 누군가가 대리점 역할을 하면서 선매출을 끊고 제품을 미리 구입했으면 좋겠습니다.” 라며 사업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는,

“국민은행은 엑스톰을 사용하는 고객이고 이미 예산도 확정되었으니 엑스톰 마진만 넉넉하게 보장해 주면 내가 선매출을 잡고 제품을 구매할 대상을 물색해 보겠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국컴퓨터 직장 선배가 경영하는 IT업체에서 국민은행에 납품될 엑스톰을 선구매해 갔다. 그런데 그해 엑스톰 도입사업이 국민은행 내부의 사정인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사업이 연기되게 되었다. 그러자 인제트의 이 대표는 엑스톰에 대한 추가적인 마진을 더 보장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내가 수용하기에는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그와의 관계가 틀어지게 되었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2005년 7월 초, 2003년부터 조흥은행에 납품되어 정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던 엑스톰을 짝퉁인 알레로로 교체하려는 그의 행동이었다. 소스코드가 같은 제품이었기에 이름만 바꾸어서 짝퉁 알레로의 납품실적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나와 우리 회사의 임직원 모두는 심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 물론 국민은행의 사업지 연으로 그가 곤란해진 사실은 충분히 짐작하겠지만 그래도 그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는 2005년 4월 22일 전후로 시작된 콤텍시스템의 기업사냥에 전격 합류하고 있었다.

 

그는 콤텍시스템이 2005년 10월 16일 출자전환에 대한 업무협약 해제를 통보하던 무렵, 나를 해임하겠다는 이사회 소집요청을 세 차례씩이나 내용증명으로 보내왔다. 이제, 이 대표는 본격적으로 조성구 사냥의 최선봉에 선 것이다. 당시 콤텍시스템의 기업사냥 시나리오를 정리하자면, 

1.2004년 8월 23일 삼성SDS를 사기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를 하자 삼성과 오래전부터 납품관계에 있던 입장에서 여러모로 곤란했을 것이고, 콤텍시스템은 채권자라는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2005년 4월 22일 출자전환 업무협약서를 미끼로 엑스톰의 국내 공급권을 빼앗아서 회사의 독자적인 영업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고,

2.동시에 미국 연구진과 통하여 소스코드를 강탈토록 한 후 짝퉁을 만들고 신제품 발표회를 강행하여 회사에 치명적인 해코지를 할 수 있는 만큼 가한 후, 

3.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자 출자전환 계약 해제를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사전에 미리 준비했던 법원의 지급 명령서를 남용하여 회사의 법인통장을 압류한 뒤 대출금을 2005년 11월 21일까지 상환하라고 통보하고,

4.콤텍시스템의 자회사인 인젠트 이OO 대표는 같은 기간 동안 작퉁 알레로를 신제품이랍시며 호텔 세미나를 콤텍시스템의 자회사인 스펜오컴과 공동으로 개최하고 수협에 공식제안을 하는 등 회사의 등기이사직을 겸하는 경영자 신분을 망각한 채, 2005년 11월 17일  조성구를 끌어내리는 이사회를 강행하였고, 이00스스로가 내 분신과 같았던 회사의 바지사장으로 취임 한 다음 곧바로 회사를 고사시켰다. 직원들에게는 “여기는 돌보지 않을 것이니 콤텍시스템으로 가라”고 했다. 당시 나는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은행대출 시 연대보증을 선 상태였다. 은행 에 지급할 이자가 연체되자 곧바로 보증인인 나에게 빚 독촉이 시작됐다. 

 

당시 나를 끌어내리는 이사회에 참석한 인원은 전체 등기이사들 11명 가운데 업무상 배임죄를 계획적으로 그리고 조직적으로 저지른 6명이었다. 상법상 정족수가 과반이상이었기에 표면 상의 이사회 성립요건은 갖추게 된 꼴이었다. 등기소에서는 서류상의 구비요건만 갖추면 대표 이사 변경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이 6명 가운데에는 자신들의 봉급을 주던 사장을 끌어내리겠다며 태평양 바다를 건너온 미국  직원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의 비즈니스 클래스 왕복항공권과 특급호텔 체류 비용 역시 콤텍시스템의 자회사인 스펜오컴이 지급했다. 물론 두 달 전의 짝퉁 발표회 행사시에도 왕복항공권과 호텔체류 비용 전액도 지급했다. 결국, 이들의 치밀한 덫으로 얼라이언스시스템호는 난파선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모든 시나리오에는 석연찮은 부분들이 꽤나 많다. 나를 대표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열렸던 장소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타이어 빌딩 6층에 있는 법무법인 ○○○이었다. 법무법인 ○○○은 2004년 8월 삼성SDS을 고소 당시 삼성 측의 변호인이었다. 서울고검의 박 검사가 나에게 폭언을 하면서 삼성 변호사를 만났다고 했을 때 역시 당연 법무법인 ○○○이었을 것이다. 

 

삼성SDS를 상대로 2004년 10월 148억 원의 민사소송을 냈을 때 역시 상대의 변호인은 법무 법인 ○○○이었다. 2010년 12월 콤텍시스템의 대표와 회사의 신임 바지사장들을 업무상배임 혐의로 고소 시 역시 마찬가지였고, 최근 진행했던 서울남부지법 민사소송도 역시, 법무법인 ○○○에서 변호를 맡았다. 앞으로 진행될 모든 법정 싸움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법무법 인 ○○○은 태평양 앞 바다에 떠 있는 해적선만 같았다.

 

나는 회사를 암초지역에서 꺼내려고 앞서 말한 듯 피눈물 나는 노력을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업무상배임죄를 저지른 이사들이 강행했던 이사회에 대하여 대표이사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었고, 특별 주주총회 소집요청도 냈지만 모두 다 기각되었다. 최근 진행했던 서울남 부지법의 민사소송 역시 2013년 2월 기각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힘없으면 죽이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나라에서 법의 혜택을 받으려면 증거 말고 또 무엇이 있어야 가능하단 말인가?

 

우찬아빠 우리 어디로 가요?

 

젊은 청춘을 다 바쳤던 회사는 2005년 11월 17일 치밀하게 준비된 기업사냥으로 인하여 난파선 신세로 전락된 채 가짜 선장이 은행 대출금의 이자를 연체하자 연대보증인이었던 나에게 상환압박을 해왔다. 아마도 누군가는 내가 하루라도 빨리 신용불량자로 전락해서 펄펄 뛰다가 울화병으로 죽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나와 수시로 만나서 회사의 경영전반에 대한 자문도 해주고 밥도 사주면서 용기를 주던 콤텍 시스템의 대표이사는, “삼성과 싸우려면 자금이 든든해야 한다.”며 10억 원을 계약서도 없이 빌려주었는데 그런 그들은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부터 압류했다. 당시 내 집은 조흥은행에서 1순위로 근저당을 설정해서 그들에게 돌아갈 국물은 별로 없었다. 내가 하루라도 빨리 처자식과 함께 길바닥에  나 안기를 바랐던 것이다.

 

당시 우찬이는 돌을 갓 지난 상태였고 큰 딸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사춘기가 와있던 시기라 모든 면에서 감수성도 예민했고 특히나 나와 함께 우리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집 사람을 생각하니 눈앞이 막막했다. 공권력의 무능과 횡포로 우리 가족의 보금자리였던 집조차도 지킬 수 없는 극한상황이 눈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게 경매유찰로 집이 쉽게 팔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억울한 빚 독촉으로 인해서 몸과 마음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

래도 언젠가는 억울함을 밝힐 수 있는 좋은 시절이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다 2007년 2월 초, 나와 집사람은 어린 자식들과 함께 한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쫒겨났다.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은 서울 송파 가락동 동부센트레빌 56평짜리 아파트였다. 나는 원래 성남 분당에서 전세를 살았다. 당시 우리 회사의 주거래 은행이었던 조흥은행의 지점장이 회사의 안정적인 자금운영을 위해서는 은행대출이 필요할 텐데 대표이사가 재산세 납부실적이 전무해서 곤란하다는 입장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가능한 한 큰 집을 샀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재산세 납부실적이 커져서 회사의 자금지원이 수월하다는 것이다. 물론 담보로 제공해주길 바랐다. 나는 집 살 돈이 없다고 했더니 집부터 사면 부족한 자금은 대출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56평 아파트를 사게 되었고 5억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나는 당시 직원들 보다 급여가 많지 않았다.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항상 최우선이었는데 집을 사면서 엄청난 이자 를 내야해서 급여를 올려야만 했다. 그렇게 장만한 집은 회사의 담보로 제공했다. 그렇게 피 눈물나는 사연이 깃든 집에서 월세방으로 쫒겨난 것이다. 살림살이도 대부분 버려야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 병역도 국가가 부르기도 전에 내 스스로가 공군 통신기술병에 지원 입대했고, IT 벤처기업을 창업해서 고용창출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확보하기 어려운 ‘비정형데이터’ 처리를 위한 사무자동화 분야에 세계 최고의 제품을 국산화하여 수천만 달러의 수입대체 효과로 외화를 절감케 하였다.

그리고 엑스톰 제품으로 사무자동화 시스템을 완벽히 구축하여 금융권과 정부부처 등 이 나라 산업 전반에서 최소한 수조원 이상의 직간접 비용을 절감케 하였다. 그런데도 왜, 나와 내 가족은 법의 보호도 받지 못하며 억울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이라면 당연히 죄 값을 달게 받겠지만, 세상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처자식에게 할 짓인가 싶다. 내가 대한민국을 먹여 살린다는 삼성을 상대로 반기를 들고 맞서니까 심기가 불편해져서 그런 것인가? 그 삼성이 중소기업과 힘없는 노동자에게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정녕 모른다는 말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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