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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건들면 이렇게 당한다? 사냥개에게 물린 벤처기업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4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5/07/21 [16:43]

삼성을 건들면 이렇게 당한다? 사냥개에게 물린 벤처기업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4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5/07/21 [16:43]

사냥개의 등장

 

서울중앙지검의 짜고 치는 고스톱 수준의 삼성 봐주기 무혐의 처분 후 2005년 3월 15일 서울 고검에 항고할 당시 이전부터 얼라이언스시스템에 대한 기업사냥은 착착 추진되고 있었다.  그리고 2004년 8월 삼성SDS를 고소 후 그들과 불편한 관계로 치닫자 고객인 은행들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일부 고객은 엑스톰 도입에 대해 난감해 했다. “가재는 게편이다.”라고 다른 재벌대기업들도 나를 왕따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은행들은 엑스톰 관련 사업들을 미루었고 또 어렵게 추진시켰던 일조차도 번번이 일이 꼬이기만 했다. 이로 인해서 회사의 매출은 날이 갈수록 감소했다. 

 

나는 당시 엑스톰 개발을 위해 7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대부분이 선투자한 빚이었다. 이처럼 소프트웨어 제품 개발은 선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은 분야이다. 뿐만 아니라 제품개발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설령 제품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 하더라도 시장진입이 결코 만만치 않은 분야이다. 세계적인 제품들이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제품개발비 70 억원 중에서 43억 원을 집과 주식을 담보로 마련했다. 이 중에서 14억원은 콤텍시스템이라는 네크워크 장비를 만드는 상장사에게 빌렸는데 회사의 매출이 감소하자 이자 지급조차도 힘들어졌다. 당시 콤텍시스템은 얼라이언스시스템의 사업성을 보고 투자도 하고 또 우리 회사의 엑스톰 제품을 그들의 고객에게 팔아주는 대리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전환사채 5억원을 발행했고 추가로 필요했던 자금은 지원도 받는 일종의 전략적 파트너 관계였다. 그들의 자회사인 인제트라는 회사의 대표이사는 내가 직장생활을 할 당시 나의 직장상사이었기에 콤텍시스템의 공동대표와는 매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콤텍시스템의 공동대표였던 남00 대표이사는 2000년 초부터 얼라이언스시스템의 주주였고 또 등기부 등본에 사외이사로 올라간 신분이었다. 이처럼 호의적 관계였음에도 불구 하고 2004년 8 월 삼성SDS를 고소하면서 관계가 서서히 틀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삼성SDS를 고소하기 전에 콤텍시스템의 남00 공동대표와도 여러차례 이 문제에 대하여 상의도 했다. 그는 IT업계의 선배였고 내가 부족한 사업자금은 언제나 항상 호의적으로 지원도 해준 관계였다. 

 

그는 “삼성과 싸우려면 자금이 든든해야 한다.”면서 10억원을 지원해주면서 “밀린 이자는 나중에 회사가 좋아지면 갚아도 된다.”며 그야말로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였다. 그런  그들이 2004년 11월 검찰수사가 삼천포로 빠져들기 시작하면서 돌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2005년 새해 초부터 밀린 이자와 원금을 포함해서 전액을 갚으라고 했다. 삼성 SDS와의 싸움으로 회사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진 것을 알면서도 자금 압박을 가한 것이다. 어느새 우리 회사의 법인통장도 압류했다. 그토록 우호적이었던 전략적 파트너가 한순간에 나의 숨통을 끊겠다고 나선 것이다. 

 

나는 우선 당장은 그들의 자금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엑스톰 저작권을 담보로 은행의 대출을 추진하기로 마음먹었다. 또한 콤텍시스템에게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호소했다. 그러면서 나는 “밀린 이자와 원금 전액을 출자전환 하자.”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예상 밖으로 선뜻 출자전환을 하겠다고 나섰다. 대신 엑스톰의 국내 영업에 대하여 독점적 권한을 달라고 했다. 나는 당시 삼성SDS와 싸우면서 국내영업을 얼라이언스시스템 이름으로 추진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미 대한민국 전체가 삼성의 힘에 장악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2005년 4월 22일 콤텍시스템과 기업사냥의 덫이 설치된 계약 하나를 맺게 되었다. 업무협약 계약서로서 밀린 이자와 원금을 포함해서 전액 출자전환 하는 것과 그들에게 국내의 독점적 영업권을 넘겨주는 것이다. 그런데 콤텍시스템은 출자전환을 하면서도 채무의 상환이 아니라 편의의 제공이라는 모호한 문구하나를 삽입했다. 나는 “이게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닌데 뭐 하시는 겁니까? 출자전환을 이행하겠다.”라는 계약보증을 요구했다. 그러자 콤텍시스템은 출자전환을 위약할 경우 자신들의 채무는 소멸되는 것으로 계약보증을 하면서 나에게는 주식 전액을 양도담보로 제공할 것을 못 박았다. <출자전환 협약서 참조>

 

그렇게 계약협의가 진행되던 중 이번에는 출자전환을 미끼로 미국직원들과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이유는 “얼라이언스시스템이 해외사업으로 바빠지면 콤텍시스템이 국내의 기술지원을 위해 필요시 미국직원들에게 메일정도는 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그들 중에 세 명이 우리 회사의 등기이사 신분에다 고액의 스톡옵션이 체결된 입장이었기에 설마 회사에 해가되는 일들은 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두 회사는 출자전환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출자전환 계약서는 기업사냥을 위한 치밀한 덫이 되고 말았다. 정말이지 인간의 사악함은 그 끝이 없었다.

 

짝퉁이 신제품?

 

그렇게 콤텍시스템과의 업무협약 체결로 14억 원의 대출을 출자전환하면서 미국 연구법인의 직원들 연락처를 알려주게 되었다. 그런데 열흘도 지나지 않은 5월 초, 부사장이었던 모리스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는 태권도 4단의 사범으로 한국정서를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그리고 나와 함께 엑스톰을 개발하면서 함께 고생했던 사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잘 참는 성품이었다. 그런 그가 다짜고짜 격앙된 목소리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당시 미국 직원들의 봉급을 두 달 가량 못주고 있는 상황이라서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는 나를 미국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소하겠다며 협박을 하였다. 밀린 봉급을 문제 삼겠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약 6년 간 일하면서 여러 힘든 과정도 겪었는데 회사가 삼성을 잘못 만난 악연으로 힘들다고 해서 경영자 신분인 그가 나를 협박한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밀려들었다. 그 역시 삼성의 행태에 대하여 공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캘리포니아 법원에 제소를 하게 되면 꼼짝없이 법정에 서야 할 입장이었다. 삼성SDS와 법적문제로 시간적 여유도 없었지만 심적으로도 힘든 상황에 봉급 문제로 미국에서의 법적인 대응은 나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 시기는 일본사업과 중국, 태국의 신규 사업으로 하루하루가 정신없던 나날들이었다. 그런 나의 약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모리스는 봉급문제를 삼으며 엑스톰의 소스코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명해 달라는 협박도 가해왔다. 기가차서 말이 않나오는 상황이었지만 불리한 것은 내 자신이었다. 엑스톰을 개발했던 핵심멤버였기 때문에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빼돌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나는 순간 뭔가 일이 단단히 꼬여가는 것을 직감했다. 모리스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미국직원들 모두가 회사를 떠나겠다는 것이다. 사전에 작당들을 했다는 반증이다. 다만 그들에게는 미국 연구법인의 스톡옵션 말고도 한국본사에 대한 대량의 스톡옵션을 제공했기에 회사를 나가더라도 해를 끼치는 짓들은 하지 않을 것으로 애써 믿었다. 그들 역시 한국본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되 어 있었기에 해를 끼치는 일을 하면 업무상배임 행위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미 제품은 잘 개발이 된 상태였고 그들의 역할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해서, 그들 스스로가 엑스톰의 소스코를 이용해서 별도로 응용 후 미국에서 먹고 살겠다면 꼭 말릴 필요도 없었다. 내가 소스 코드 이용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무슨 짓들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들의 역할은 이미 끝난 상황이었고 나의 청사진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상황이었기에 꼭 그들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백업 대책은 충분했기에 소스코드 이용 협박을 들어 줄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들은 엔지니어 출신들로 비즈니스와는 거리와 먼 사람들이어서 내가 어느 정도 준비만 되면 미국 시장에 대한 마켓팅은 전혀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설령 그들과 미국시장에서 경쟁을 하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협박을 당한 후 콤텍시스템 직원들에게서 이런 소문이 나돌았다. 미국직원들에게 50만 달러를 몇 차례로 나누어서 송금했고 그 후로도  별도의 뭉칫돈을 송금하기로 했다고.

 

그런데 우려했던 일들이 기어코 벌어지고 말았다. 2005년 6월 30일, 미국 캘리포니아 미국연 구진들이 샌디에고에 알레로테크놀로지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7월 초 ‘알 레로’(Alero)라는 제품을 출시했다. 엑스톰의 제품 이름만 바꾼 짝퉁이 만들어진 것이다. 뻔뻔함의 극치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것도 얼라이언스시스템의 등기이사 신분이었던 그들에 의해서 말이다. 업무상배임죄를 노골적으로 저지른 것이다. 

 

그 당시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우리는 당신들과 함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기를 희망한다. 조성구와 모든 사업을 그만한다면 돈을 보내겠다.” 라며 콤텍시스템이 연락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모리스는 “돈부터 보내면 믿겠다.”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좋은 제안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 내가 집과 주식을 담보로 마련한 70억 원의 돈으로 만든 제품이었는데도 말이다. 콤텍시스템은 자회사인 스펜오컴(Spenocom)과 인젠트(Inzent)를 앞세워서 9월에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신제품 발표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백여명이 넘는 엑스톰 고객과 함께 콤텍시스템의 두 공동대표와 그들의 자회사인 인젠트(Inzent)의 이OO 대표, 우리에서 콤텍시스템으로 이직한 전 전무이사 그리고 미국 연구법인의 핵심멤버 세 명 모두가 동참했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의 등기이사들이 짝퉁을 만들고도 신제품 이랍시며 대대적으로 업무상배임죄를 저질렀음을 천명한 날이었다. 

 

짝퉁 발표회 행사장 입구는 보디가드가 지켰다고 한다. 무엇이 두려웠을까? 그들 스스로도 해서는 안 될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 날 행사장에 참석했던 엑스톰 고객들은 이들의 행태를 비웃었다고 했다. 몇 몇 고객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짐승같은 놈들이라며 한 숨만 내쉬었다. 인젠트의 이00 대표는 “신제품 발표회가 성황리에 개최되었다.”라며 회사 홈 페이지에 홍보를 하였는데 자신이 얼라이언스시스템의 등기이사 신분임을 망각한 처세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짝퉁 알레로의 국내총판을 담당한 스펜오컴(Spenocom)은 인제트의 이 대표와 함께 얼라이언스시스템의 고객을 대상으로 엑스톰을 짝퉁인 알레로 이름으로 교체하자며 대대적인 영업활동을 했다고 한다.

 

당시 사건을 요약하면, 출자전환을 미끼로 미국직원들의 연락처를 빼낸 후 콤텍시스템은 이들을 매수한 뒤 나를 협박하여 소스코드를 강탈토록 한 후 짝퉁을 만들고 국내총판권을 거머쥔 것이다. 이렇게 얼라이언스시스템에 대한 기업 사냥은 치밀한 준비로 실행되고 있던 것이다.

 

당시 짝퉁 알레로 영업을 총괄하던 자는 인젠트의 대표이사로서 내가 한국컴퓨터 직장생활 시 금융영업팀을 담당하던 상무였다. 내가 창업 준비로 회사를 나올 무렵 그는 전무로 승진했고,  콤텍시스템의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콤텍시스템의 자회사인 인젠트의 대표이사로 영전했다. 그는 나에게 있어서 IT 분야의 대선배였고 얼라이언스시스템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은 경영진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다음 꼭지에서 별도로 이야기한다.

 

짝퉁 알레로가 엑스톰을 카피한 수준은 코미디였다. 알레로의 제품설명서가 얼마나 급했는지  여러 페이지에  엑스톰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알레로테크놀로지가 설립된 날은 2005년 6월 30일이었는데도 판매실적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짝퉁 알레로가 2003년 12월에 성능평가도 했다는 것이다. 만들어지지도 않았는데 판매가 이루어지고 성능평가 시험을 마쳤다는 3류 코미디인 것이다. 

 

당시 IT업계에서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자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힘없는 조성구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서 사냥개에게 당했다.”  “사냥개는 허수아비 일 뿐이었다.” 라고. 이 모든 사건은 삼성SDS를 고소하면서 생긴 일이기 때문이었다. 

현실이 이러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조리에 공분하면서도 내 편에 서는 것은 두려워했

다. 이 나라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젊은 청춘을 다 바쳐서 일구었던 나의 모든 것은 철저히 공중분해된 것이다.  

   

2005년 9월 7일, 수협에서 이미지 시스템 구축을 위한 제안요청서가 나왔다. 그러자 콤텍시스템은 엑스톰이 아닌 짝퉁 알레로를 제안하였다. 사전에 준비된 각본에 의해서, 이는 출자전환으로 국내 독점 공급권을 빼앗고는 나를 고사시키는 수순이었다. 그렇게 준비된 각본대로 얼라이언스시스템를 좌초시키고는 짝퉁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을 완료하자 콤텍시스템은 2005년 10월 16일 업무협약 계약을 해제한다는 문서를 보내왔다. 

 

그리고는 출자전환으로 채무가 이미 소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준비했던 법원의 지급명령서를 남용하여 회사의 법인통장까지 압류했다. 그리고 11월 17일 불법적인 이사회를 강행하여 대표이사였던 나를 끌어 내렸다. 그런데 출자전환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채무였지만 채무상환 기일은 11월 21일이었다. 그들은 채무상환 기일 4일 먼저 나를 끌어내린 것이다. 존재하지도 않은 채무였지만 혹시라도 갚을까봐 싶어서 그랬던 것 같다. 또 내가 회사의 연대보증을 서고 있었으니까 회사 빚을 나 개인에게 뒤집어 쓰게 만든 것이다. 소멸된 채무라도 혹시나 갚게 된다면 그들의 모든 음모는 수포도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이중 삼중으로 확인 사살한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소름끼치는 기업사냥을 치밀하게 진행했었음에도 언론에는 이렇게 인터뷰를 했 다. 당시 콤텍시스템의 자회사 스펜오컴 김 사장은, 

“얼라이언스시스템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 알레로 총판을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성구 때문에 재고물량만 20억 원이다. 얼라이언스시스템에게 받아야 할 부채가 있다.”라는 망언과 함께 “상황이 이 지경인데 조성구 사장은 사업을 정상화하려는 의지는 없고 삼성과의 소송에만 매달려 있어 경영자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라고 언론에 발표를 했다. <이 내용은 2005 년 11월 22일 <아이뉴스24>가 심층 보도 함.>

 

그런데 그가 말한 20억 원의 부채라는 것은 스펜오컴이 삼성SDS에게 받아야 할 돈이었다.  우리은행 BPR 프로젝트 당시, 2002년 9월 2일 강만수 상무와 체결했던 업무협약서의 30억원 선발주가 문제 되었다. 선발주 30억 원은 우리 회사의 대리점이었던 스펜오컴을 통해서 세금계산서를 발행했는데, 삼성SDS는 11억 5,000만원만 우리은행의 납품대금으로 지불하고 나머지 발주금액인 18억 5,000만 원에 대하여 지불을 미루고 있었다. 당연히 삼성SDS가 지급 할 돈으로서 외상값인 셈이었다.

 

당시 스펜오컴은 자신들의 회계법인이었던 삼일회계 법인에게 삼성SDS가 스펜오컴에 지불 할 18억 5,000만 원에 대한 ‘채권채무 조회서’까지 받았다. 김 사장은 이 ‘채권채무 조회서’를 받았다며, 그의 사무실에서 복사도 해주면서 나에게 자랑까지 한 사람이었다. 

“조 사장, 내가 삼일회계 법인을 통해서 놈들에게 ‘채권채무 조회서’를 받았어. 삼성 담당자가 우리 회사에 지급해야 할 외상값(돈)이 있다고 확인해 준 것인데, 이 정도면 보증수표야. 그렇지?”

사실이 이렇게 명백했음에도 김 사장은 온갖 망발은 다 부렸다. 내가 미치고 펄펄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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