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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간 흉노(匈奴)

영화로 배우는 세계사 제 1편 -뮬란(Mulan)

템즈 | 기사입력 2013/06/13 [19:30]

동쪽으로 간 흉노(匈奴)

영화로 배우는 세계사 제 1편 -뮬란(Mulan)

템즈 | 입력 : 2013/06/13 [19:30]
▲     © GoodMorning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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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기 위해 중국은 만리장성을 한반도까지 확대하고 있다.    © GoodMorning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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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노의 주 본거지인 감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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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월지와의 동맹체결은 실패했으나  장건의 서역파견은 실크로드를 개척하기에 이른다. © GoodMorningLonDon

 

영화로  읽는  세계사 제 3편 -뮬란(Mulan) 1998년 작

동쪽으로 간 흉노(匈奴)

 

로마가 북반구 지구의 서쪽을 평정할 무렵, 동쪽에서는 중국이 여타 민족들을 제압하고 그 위세를 떨치고 있었다. 당시 그 시대 상황을 그린 영화가 뮬란이다.

월트 디즈니 픽처스가 1998년 개봉한 만화영화 뮬란(Mulan)은 중국 전설의 하나인 목란사의 주인공 화목란(花木蘭, Hua Mulan)을 그리고 있다.

 

흉노가 만리장성을 넘어오자 황제는 군대소집을 명하고 뮬란은 늙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남장으로 변장하고 전쟁에 참여한다. 파 씨 가문의 외동딸 뮬란은 '핑'이라는 가명을 쓰고 군대생활을 시작하나... 우여곡절을 겪어가며 뮬란의 활약으로 인해 흉노족을 물리치지만 여자임이 밝혀지자 처벌을 당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중국 최초 통일왕국을 건설한 진시황(BC 221)은 황제의 자리에 앉자마자 만리장성 축조에 심혈을 기울인다. 북쪽 오랑캐인 흉노를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의 사후 한나라 시대에 들어서자 한나라는 공주와 공물까지 바쳐가며 흉노를 달래야만 했다. 건원4년(BC139) 흉노에 대항키 위해 흉노에게 쫓겨 서쪽에 살고 있던 대월지와 동맹을 맺을 목적으로  장건을 파견하나 그것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흉노에게 판판이 깨지던 한나라가 승기를 잡은 것은 한 무제 때가 돼서야 가능했다. 한나라가 흉노에 타격을 가한 승리는 기원전 121년 전투였다. 위청과 곽거병에게 패한 흉노 가운데 동 흉노와 북 흉노 일부가 고구려를 거처 한반도로 이주하고 서 흉노와 일부 북 흉노는 서쪽으로 정처없는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감숙성(甘肅省)을 주 무대로 활약하던 흉노의 일파를 축출함으로써 한나라는 서역으로 가는 주요한 교두보인 돈황(燉煌)을 확보하게 된다(BC117).

 

당시 14세였던 흉노 휴도왕의 장남이었던 김일제는 어머니와 동생 윤과 함께 곽거병에게 포로로 잡혀 한무제에게 끌려온다(BC120).

김 씨라는 성은 한무제의 암살을 막아 거기장군에 임명되며 하사받은 성이다. 아버지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가지고 천주(天主)에 제사 지냈던 일에서 비롯하여 성을 김(金)으로 하였다. 이로써 김일제(金日?)는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한나라 왕실에 충성을 다한 보답으로 산동성 지역의 투(?)현을 봉지로 하는 제후, 즉 투후(?侯)에 임명되었으며 자손들이 그 관작을 계승하였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수년 전부터 한국에서 뜨거운 화제로 회자하고 있다. 문무대왕릉비에 기록된 문무왕 15대조 성한왕이 김일제의 7대손인 성한왕인가 하는 점이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신라김 씨와 김일제를 연결하는 것을 관념적 시조의식의 소산이라고 보고 있으나 이것은 한국의 역사를 반도에 국한하려는 식민사관에 근거한 것이고 볼 수 있다. 이들 식민사관자들의 주장은 '가계를 신성시하기 위해 유명한 위인들을 시조로 삼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김일제가 신라 김 씨 선조로 보기는 어렵다.'라며 김일제 시조설을 일축하고 있다.

 

김일제의 후손이 한반도 남쪽 김해로 자리를 잡은 것은 왕망이 한나라(전한)을 무너뜨리고 신나라를 세우는데 공조한 까닭에 왕망 사후 후한이 들어서자 한나라 유 씨들의 도륙을 피해 대탈주를 감행해야만 했던 까닭이다.

 

문무왕이 수중비문에 성한왕을 언급한 것은 유명한 위인이어서가 아니다. 중국 측에서 보면 김일제 후손은 도륙당해 마땅한, 지극히 극비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그 기록물을 바다 속에 감춰야만 했던 것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흉노라는 이름이 적어도 한국에서는 썩 자랑스럽게 불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지금도 흉노가 북쪽 도적떼를 칭하는 오랑캐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도 선조를 흉노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 '유명한 위인들을 시조로 간주하는 일이 많아서' 문무왕비문이 거짓을 기록하고 있다.'고 보는 식민사관생들이 많음은 어찌 된 일인가.

 

무엇보다 부족연맹체에 불과했던 신라의 역사가 6세기 초인 법흥왕(제위 514-540)때에 이르러 느닷없이 중앙집권체가 들어선 연유를 추적해 보는 것도 신라 김 씨가 흉노의 후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또 다른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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