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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신학과 신앙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16

김관성 | 기사입력 2013/03/11 [07:10]

애매한 신학과 신앙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16

김관성 | 입력 : 2013/03/11 [07:10]
진짜와 가짜를 분간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영역에도 이 문제는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포스트 모던적 가치의 핵심인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가 우리 주변을 장악한 이후, 누군가를 향하여 단정적인 선언이나 평가를 하는 일은 ‘예의 없는 녀석’이 되는 고속도로를 타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서로의 주장과 개성을 존중하는 다양성’은 굉장히 유연하고 따뜻함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만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회’라는 공간 안에서는 합의된 ‘공적 영역에서의 규칙’을 철저하게 지켜달라는 말임과 동시에 사적인 영역은 ‘너 기분에 맞는 대로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간섭하지 않겠다는 말은 책임도지지 않겠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진리를 세상 앞에서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는 일이 굳어져 갑니다. 이런 흐름은 기독교라는 내부 공간 속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을 만들어냅니다. 성경적 신앙에 대한 ‘한 가지의 해석과 주장’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네 말도 옳고 내 말도 옳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정밀하고 엄격한 성경적 신앙에 관한 관심은 자연적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신앙적 모델이 어디 있느냐? 네가 신학계의 경찰이냐?” 답답한 일이 벌어집니다.

이 말이 전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기에 마땅히 반박할 말을 찾기 어려워집니다. 자연적으로 기독교 내부 안에는 ‘이단으로 규정하기 어려우면서 동시에 성경적이지는 않는’ 신앙과 신학적 흐름이 득세하게 됩니다. 그것도 굉장히 애매하게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분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 대표적인 현상 중의 하나가 아이러니하게도 ‘십자가의 가치’만을 죽자고 강조하는 신학입니다. 이분들의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타락한 본성’에 대한 도를 넘는 비판을 가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은 공식처럼 정해져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악질 죄인입니다” 그들은 이 말을 자신 신앙의 전부로 삼습니다. “목사님 무엇이 문제죠? 성경적이지 않나요?” 이렇게 느끼실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 말을 현실화시켜버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자신들의 영적 게으름과 나태함을 교묘하게 가리기 위한 수단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이 “나는 죄인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는 구호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자”고 해보십시오. 돌아오는 답변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서 보내주실 거니까 조바심내지 말고 기다려라”이들에게 기도하자고 말해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굉장히 고상 틱하고 세련된 신앙의 소유자들처럼 보이지만 믿음의 진보는 찾아볼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죄인 된 우리의 무가치함에 대한 분명한 선언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달음박질한다” “힘쓸지니”와 같은 신앙의 분발과 열심을 강조하는 명시적 문구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진보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향한 단순하고 순전한 믿음뿐 아니라 개인적인 믿음의 싸움과 노력도 필요합니다. 거저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강조하다 보니 신앙의 영역에서 ‘노력’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되면 생래적으로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심령 위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신자로 하여금 자발적인 분투와 노력을 이끌어 내시는 것입니다.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삐뚤어진 ‘십자가 신학’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죄인이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루십니다”는 말만 반복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선한 일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거룩한 삶을 살려고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싸움은 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칭의’는 분명하게 느끼고 확신하는 희한한 신앙을 보입니다. ‘긍정의 힘’을 들고 ‘십자가와 고난’의 가치를 부정해버린 조엘 오스틴과 같은 사람도 조심해야지만 ‘부정의 힘’을 들고 나와 믿음의 수고와 분투를 부정하는 세력들도 경계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일시적인 종교적 감상이나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의 마음과 행동에 실제적인 변화를 느끼지 못하면서 얼마든지 십자가를 강조하는 ‘복음설교’에 일시적인 감동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눈물도 흘립니다.

그러나 진실하고 참된 믿음의 역사는 항상 가시적입니다. 은혜를 경험한 신자와 가장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친구와 가족들의 눈에 분명히 포착이 됩니다. 은혜 안에서 자라가는 신령한 체험은 자신만이 알거나 은밀한 형태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내나 남편, 자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믿음은 가짜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신의 더러움과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골방에서 한없는 눈물을 흘림과 동시에 새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처럼 보이는 가짜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하나님 말씀에서 인정하는 신앙적 체계를 형성해 가고 있는지 관심을 두셔야 합니다. 사탄은 “나는 마귀다. 무섭지”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아름답고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서 우리의 영혼을 삼키려 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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