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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한 사람을 만나 본적이 있나요?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 -14

김관성 | 기사입력 2012/11/06 [16:49]

회심한 사람을 만나 본적이 있나요?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 -14

김관성 | 입력 : 2012/11/06 [16:49]
신학교 3학년부터 시작된 사역자로서 삶은 교회 구성원들과의 울고 웃는것들로 채워진 인생이었습니다. 성도의 교제 가운데 즐거움과 행복을 경험하기도 했고, 관계의 손상과 그것의 결과로 찾아온 이별의 아픔들 속에서 비통과 자책의 눈물들. 그것이 저의 삶이었고 사역의 흔적이었습니다.

저 자신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그 세월 속에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 사실들, 더 성숙하게 된 영역들, 조금은 둥글게 다듬어진 인격들이 형성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역을 처음 시작했을 때와는 조금은 더 노련해 진 것 같습니다. 간직하고 있어야 할 것들을 잃어버린 것들도 많지만요.

이렇듯 한 사람 사역자의 성숙과 성장의 측면에서 보자면 교회의 사역은 큰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몸담고 사역을 감당했던 거의 모든 교회 안에서 공통으로 확인되는 무서운 현실들이 한가지 존재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의 실체를 정확하게 묘사하거나 정의하기 어려웠습니다. 저의 의식 속에서 막연하게 맴돌기만 했었지 그것의 정체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실체가 사역의 시간이 쌓여갈수록 명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고향교회를 필두로 해서 지금 이곳 덕은 교회의 사역 속에서 목회자의 정직한 심령을 가지고 고백해보자면 설교나 성경공부 사역을 통해서 진정한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거의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두려운 고백입니다.

이미 회심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영혼의 각성'을 하는 자리에 서는 분들은 아주 가끔 보았습니다. 이것도 심각한 현상이긴 마찬가집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제가 설교나 성경공부를 가르치는 일에 은사가 없는 사람은 아닙니다.<부끄러운 말이니 용서하십시오.>

순전히 저의 경험으로만 말씀드리자면<저의 독단적인 의견이니 이해를 부탁합니다.> 교회 안에서 회심, 중생, 거듭남, 성령 침례<세례>와 같은 현상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안을 채우고 있는 내용과 현상들은 대부분이 믿지 않는 자들도 흉내를 낼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전부입니다. 심하게 이야기하자면 동호회 모임을 십자가가 달린 예배당에서 열고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교회 안의 보편적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여러 가지의 원인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교회를 찾아나오는 사람들의 의식의 상태가 기독교 신앙이 요구하고 있는 '참된 신자 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교회를 찾아나오는 사람들의 '노림수'가 지극히 세속적입니다. 그것이 꼭 '복을 받기 위해서' 만은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흐름은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교회의 '유유상종' 현상입니다. 학력, 경제적 상태, 사회적 신분이 비슷한 레벨에 있는 사람들끼리 교회가 형성되고 있는 현실은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큽니다. "우리끼리 알콩달콩 살아보자"는 구호가 하나님 말씀을 대체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런 정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교양, 재력, 지적 수준, 상식을 비슷한 수준에서 소유한 사람들끼리 안락하고 좋은 공동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공동체에 소속되어진 것으로 자신의 신앙과 신분적 수준을 스스로 확인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이런 수준의 사람이야!'를 증명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가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식의 가치관을 소유한 채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기독교의 핵심진리에 대해서도 무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차피 그런 것들은 관심 밖이기 때문에 자신이 진정으로 참된 믿음 안에 있는 신자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없습니다.

이들은 '회심이니 거듭남이니 하는 고리타분한 것들은 집어치우고, 같은 수준에 있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예배 후에 전개될 멋진 교제의 장을 만들어 달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요? 교회 안에 각종 동호회 모임들이 넘쳐나고 있음을 봅니다.<개인적으로 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축구회, 바리스타 양성 모임, 등산회, 테니스회, 맛집 탐방 모임.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영혼을 각성케 하는 자리에 서는 시간이나 하나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기대하고 사모하는 마음보다 2차적인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군상입니다.

예배 후에 푸른 잔디밭에서 두 사람을 제치고 중거리 슛으로 상대방의 네트를 흔들어 버리는 그 상상의 힘이 지루하고 의미 없는 예배시간과 성경공부 시간을 버티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 즉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의 기분과 감정을 상승시켜주고, 안정감을 주고, 염려와 걱정에서 일시적인 해방을 안겨주는 것들로 교회 안의 프로그램들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역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역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한 사람의 영혼을 진정으로 각성케 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리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많은 청중을 모아서 소위 부흥<?>을 이룬 목사님들의 설교 사역입니다.

들어보면 그 내용 안에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습니다. 메시지의 전반적인 흐름이 실용적인 내용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아내를 기쁘게 하는 방법", "집안일을 즐겁게 하는 비법",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는 길", "교회 생활을 위한 5가지 원칙", "염려와 걱정에서 해방되는 길", "꿈을 이루기 위해서 지금 해야 할 일" 대부분이 이런 식입니다.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 있는 교회들이라고 자부하면서 그들의 선조가 증거가 됐던 내용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설교의 내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청중들의 화투패<정신상태와 노림수>를 예리하게 파악해서 그것을 복음의 정신 앞에 굴복게 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지 않고 그들의 화투패를 기가 막히게 포착한 다음 더 재미나게 화투를 칠 수 있도록 적당히 가공된 말씀의 패를 내어놓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사람들로 가득채워지고 있습니다. 종교시장은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좋은 시절은 좋은 시절대로 괴롭게 힘던 시절은 그 시절대로 손님들은 찾아옵니다. 그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것이 과연 우리에게 유익일까요?

냉철하고, 정직하게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봅시다. "'이삭줍기'하듯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성도로 채워진 그런 식의 부흥을 제외하고 진정으로 '회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자라감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의 교회에는 존재하고 있습니까?"

저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목사로서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을 10년이 넘는 사역 속에서 거의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저의 마음입니다. 참된 은혜 안에 잠겨서 '지금 이순간 이대로 죽음의 자리에 부름 받아도 아무런 여한이 없습니다.'는 고백을 누군가로 부터 듣고 싶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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