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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떠나는 아침>

김관성 목사의 광야에서의 외침13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2/08/06 [07:26]

<휴가 떠나는 아침>

김관성 목사의 광야에서의 외침13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2/08/06 [07:26]

 
휴가를 떠나는 새벽입니다. 어제 저녁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새벽기도회를 하루라도 직접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변함없이 4시에 기상하여 예배당으로 올라갔습니다.
90세의 할머니 집사님께서 오늘도 가장 먼저 나오셔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갑자기 저에게로 다가오시더니 봉투를 한 장 주십니다. “목사님. 부임하셔서 첫 휴가 떠나시는데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주 세요”
봉투를 받지 않는 것을 목회의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할머니들의 것은 거절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말로는 전부 표현하기 힘든 묘한 정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를 섬기시는 진심이 표현된 자기만의 방법이기 때문에 기분 좋게 허락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담대한 마음으로 거절했을 때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후 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습니다. 특별히 덕은교회 할머니 집사님들의 인식 속에는 “목사님은 왕이다”는 생각들이 깊이 녹아있기 때문에 거절의 신호를 보냈을 때는 ‘자기비하와 자책’의 자리로 할머니들을 몰아가게 됩니다. 이처럼 할머니들에게 목회의 원칙을 지키기란 사실상 불가능 합니다
오늘 아침의 봉투 사건은 무딘 감각의 소유자인 저에게 며칠 전 부터의 일들을 복기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3일 전으로 기억합니다. 다른 할머니 집사님께서 사택으로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모님. 목사님. 좋은 옷 입고 다녔으면 좋겠어요. 모시고 가서 비싸고 고급스러운 옷을 사 입히세요. 돈은 제가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따라가고 싶은데 몸이 안 좋아서……. 그리고 늙은이가 목사님 따라가면 보기가 흉할 것 같아요”
 
저의 외모와 말씨는 강남 스타일이기 때문에<ㅎㅎ>옷은 아무것이나 걸쳐도 다 어울립니다. 타고난 외모를 주셨다고 믿고 이제까지 왔습니다. 아내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냅니다. “여보. 어떻게 할거에요?”, “뭘. 난 옷가게 절대 안가”, “알겠어요. 당신이 책임지세요. “알겠어.
 
이게 웬일입니까? 하루가 멀다 하고 계속 전화가 옵니다. “사모님. 목사님이랑 다녀오셨어요?” 아내는 이런 변명 저런 변명을 쏟아놓으며 피해갈 구실을 찾아보지만 역부족입니다. 일은 점점 더 꼬입니다. 이발을 하고 오는 길에서 그 집사님과 직접 대면하게 된 것입니다.
“목사님 섭섭해요. 이럴 수가 있어요. 저 그만한 돈은 있어요. 어서 사모님이랑 옷가게 가셔서 하늘하늘 한 옷을 아래위로 뽑아 입으세요. 그렇게 하실꺼죠?”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도 못하고 안하겠다고 하지도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둘러대고 집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전화가 옵니다. “목사님. 사모님 좀 바꿔주세요” 통화가 길어집니다. 통화를 끝내고 나서 아내가 통 사정을 합니다. “여보 같이 가요.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내의 손에 이끌려 도살장에 끌려가듯이 동네 옷가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싸고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으로 대충 골라”, “당신이 모든 것을 책임지세요. 난 몰라요”, “알겠어.
면바지와 티 한 장을 구입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주일날 영수증을 보신 집사님께서 한 말씀을 건넵니다. “목사님. 이럴 수가 있어요. 가격이 이게 뭐에요. 창피하게. 좋은 것 입으셔야지”, “집사님. 이거 좋은 거예요. 메이커에요”, “몰라요. 몰라. 제발 그렇게 하지마세요. 미안해죽겠어요”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습니까? 옷을 사준 사람이 미안해하다니……. 저는 무서운 책망<?>에 시달리면서 눈치만 보면서 주일을 보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주보에 목회자 휴가 광고가 나간 것을 보고 할머니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촌스러운 목사 고향 가는 날, 편안하고 좋은 모습으로 보내시려고 하나씩 맡은 것입니다. 그것을 조직화하고 계획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이심전심으로 서로 마음이 통한 것입니다. 새벽에 나와 마지막 새벽기도회를 인도하고 강단 뒤로 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미안하고, 고맙고, 죄송하고, 감사하고 복합적인 심정이 저의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하나님. 이곳에서 목회하는 동안 교인들 가슴 아프게 하는 일이 없도록 저의 길을 지켜주옵소서!”
휴가를 떠나야 하는 시간인데 기도가 점점 더 길어집니다. 특별히 할머니들 한분 한분이 떠올랐습니다. 방광암에 걸려 수술하신 집사님, 당뇨로 고생하시는 집사님<옷 사건의 주인공>, 90세의 연세에 소녀의 감성을 지니신 집사님<봉투 사건을 주도하신 분>, 손자를 혼자서 키우시는 집사님, 아들을 먼저 세상으로 보내신 집사님, 가난해서 목사님께 해드릴것이 없다고 늘 미안해하시는 집사님, 밑반찬을 만들어 3일이 멀다하고 사택을 방문하시는 집사님. 한분 한분이 스쳐 지나갑니다.
이 분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우리 할머니들을 지켜 주옵소서. 부족한 종. 고향 가 있는 동안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머니들의 건강을 책임져주옵소서!”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목사인 나 자신이 더 잘사는데 대접은 할머니들이 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 한 현실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하는 순간, 아이들의 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보. 저거 뭐야?”, “박 집사님이 아이들 데리고 가셔서 나이키 샌들 사주셨어요. 고개를 들수 없는 심정으로 고향을 향합니다.
휴가 떠나는 목사의 마음을 난도질<?>해버린 이 성도들로 인해서 하나님 앞에 너무 감사하고 벅찬 감격이 치솟아 올라옵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들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조폭도 아니고 무슨 배신 타령을 부르고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세상에 물들어 버린 목회자의 모습 때문에 성도들이 얼마나 큰 상처를 입고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 가족들이 베풀어 주시는 이 사랑과 은혜를 보답하는 길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목사로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집니다.
권사님들께 마지막 농을 건넵니다. “권사님. 며칠 동안 저 보고 싶어도 울지마세요. 왜 울고 그래요. 울지마세요.” 권사님이 배를 잡고 웃습니다. “목사님. 잘 다녀오세요.” 이렇게 부임한 이후 첫 휴가를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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