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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찾아 삼만리

김관성 목사의 광야에서의 외침-9

김관성 | 기사입력 2012/06/28 [07:06]

교회 찾아 삼만리

김관성 목사의 광야에서의 외침-9

김관성 | 입력 : 2012/06/28 [07:06]

목사로서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식당을 많이 가게 됩니다. 오늘 날의 목사들의 슬픈 운명입니다. “목사님. 제가 오늘 맛있는 것 대접해드릴께요” 감사한 일입니다. 집사님들의 인도를 따라 이곳저곳을 다녀봅니다. 그럴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한국에는 먹을 것이 끝도 없이 늘려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양한 먹을거리가 삶과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음식점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어지다 보니 교회에 손님들이 찾아왔을 때 “어떤 집으로 모실까?”를 고민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분명히 가야할 곳은 온 천지에 늘려있는데, 그것이 상당한 고민과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비단 먹는 문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자신의 의지를 동원해서 마음껏 선택할 수 있는 기회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제공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어야 될까? 무엇을 입어야 될까? 어디로 가야될까? 무엇을 봐야 될까? 무슨 직업을 구해야 될까? 어떤 학교에 가야될까?” 끝이 없습니다. 무언가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히 좋은 것이지만 그 안에는 마음의 평안을 위협하는 요소들도 잠재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도 이러한 흐름 속에 이미 포함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교회도 자신의 기호와 취향에 따른 선택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더 이상 음식에만 간을 보는 일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도 간을 봐야만 하는 하나의 기호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이 교회를 선택했을 때 어떤 희생과 유익이 존재할까?” 음식과 식품을 구입할 때 가지는 철저한 소비자 마인드가 교회를 결정하는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첫째, 설교가 좋을 것. 둘째, 내가 하는 일과 사업에 도움이 될 것. 셋째, 헌금에 대한 부담이 없을 것. 넷째, 구역이나 소그룹 참여에 대한 부담이 없을 것. 다섯째,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될 것. 날카로운 촉수를 가지고 이 교회 저 교회를 훑어보게 되는 것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고객들과 소비자들에게는 입소문이 최고의 광고가 됩니다. 자신의 인맥들을 동원해서 이 교회 저 교회를 추천받기도 하고 추천하기도 합니다.

“김 집사. 그 교회는 아니야. 곧 교회 건축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에이 몰라. 박집사. 그러면 집 앞에 개척교회에 가자는 말이야. 말을 되는 소리를 좀 해” 어디서 집사 직분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그 꼴이 참 가관입니다.

등록 절차를 거의 완료하는 시점에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는 현상이 보일 때는 환불<?>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정이 생겨서 다음 주부터는 뵙기 어렵겠네요.” 말씨는 상냥한데 여우같은 표독스러움을 담아 발걸음을 돌려버립니다.

교회를 일회용 티슈처럼 여기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일회용 휴지의 특징은 한번 사용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교회도 자기의 목적과 삶의 유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현장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교회와 관련해서도 ‘선택하고 버리고 선택하고 버리고’의 원칙을 고수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 패턴을 반복하는 인생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온 마음을 다해 섬기고 헌신해야할 현장으로 교회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정통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교회와 헌신은 분리 될 수 없는 개념인데 이 모든 것이 ‘아 옛날이여’가 되어버렸습니다.

실제적으로 교회를 바꾸어 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전도를 하다보면 “아직까지 교회를 못 정했어요” 이런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처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그 폭이 넓어지면 ‘헌신과 연속성’의 가치가 박살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내뱉으면서도 진정성이 담긴 헌신은 찾아보기 힘든 이상한 성도들로 교회가 채워지고 있습니다.

내 삶과 인생을 드려 연약하고 부족한 교회를 사역자와 함께 일으켜 세우겠다는 꿈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속담에 “다른 집을 한 번도 방문해 보지 않은 사람은 어머니가 세상의 유일한 요리사다” 라는 속담이 전해집니다.

이 속담을 교회에 적용해보면 “이리 저리 다른 교회로 다녀보지 않는 사람은 자기 교회가 이 세상의 유일한 교회인줄 안다” 정도가 되겠습니다.

차라리 아무런 정보가 없어 이런 무지함 속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더 복된 신자의 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현재의 교회의 상황은 오직 자아의 만족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인생들이 수많은 정보를 통해서 다양한 요리사<교회>의 음식을 맛보려고 안달이 나있는 상태입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교회가 얼마나 귀하고 복된 곳인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들은 여기 저기 기웃거리는 ‘영적 장돌뱅이’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아 보입니다.

“이 교회는 사랑이 없어!” 그렇게 외치는 것이 자신의 믿음 없음을 온 동네에 소문을 내고 다니는 것인지도 모른 체 오늘도 보물섬<다른 교회>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소장하고 있는 영어책과 영어실력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한권의 가치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책 조금 저 책 조금’ 하다가 10년 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그러니 어학공부에 10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회화 한마디 못하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신앙은 결단코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 종류의 신앙에는 헌신과 충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신앙의 깊이와 폭이 얕고 제한적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 삶의 근본적 가치가 ‘순간적 충동’위에 세워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약간의 상처와 변수만 생겨도 교회 옮길 준비를 시작합니다. 혼자서는 감행할 용기가 없어 이 사람 저 사람 세를 규합해서 나갑니다. “김집사. 저쪽 교회 목사님. 유학파에다가 교회에서 영어 서비스도 한다고 소문이 자자해”

교회를 선택하고 고르는 재미에 빠진 사람은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의 영혼도 고갈되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신앙이란 것이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는 아무 쓸모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을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교회는 내 마음에 맞추어 선택하고 고르는 곳이 아니라 내 삶과 인생을 드려 섬겨야 할 현장임을 기억하십시오. 이런 귀한 중심으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수종드는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의 마음은 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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