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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많이 미안합니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8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2/06/19 [13:07]

형님! 많이 미안합니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8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2/06/19 [13:07]
정확한 출처는 모르겠습니다. 어느 일본인 작가의 말로 기억합니다. ‘가족이란 보는 눈만 없다면 쓰레기처럼 갖다 버리고 싶은 그 어떤 것이다’ 공감이 가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뼈속깊이 공감이 됩니다. 저에게 가족은 삶의 희망이자 버팀목이기도 했지만 또한 삶의 무게요 장벽이기도 했습니다.

전형적인 역기능 가능에서 자란 저의 누이들과 형님의 삶은 불 보듯 뻔한 인생행로가 펼쳐졌습니다. 사회적 통념상 여성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삶의 태도들이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누님들은 많은 아픔과 상처들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삶을 살아냈습니다.

그러나 저와 10년 차이가 나는 바로 위의 형님은 야곱의 고백처럼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된 방황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근심의 핵심 진원지였습니다.

가출, 폭력, 전과, 이혼, 자식들과의 이별, 사업실패, 고립, 형님의 인생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단어가 총동원 되어져야 합니다. 형님의 인생은 자신의 몸 안에 험난했던 인생을 고스란히 새겨 넣고 있습니다.

가슴에는 용이 하늘로 승천하고 있고, 그 용들 옆으로는 용맹함을 상징하는 칼자국과 담배로 지진 흔적들이 깊이 각인되어져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낙서장 같이 되어져 버린 비참한 세월의 흔적들이 형님의 양 팔에도 그려져 있습니다.

여름에도 타인들에게 혐오감을 줄 수밖에 없기에 항상 긴팔 옷을 입고 다니는 이유가 달리 있겠습니까?

아버지로 인한 수치심도 견디기 어려운 판국인데,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을 형님은 역시 멋지게<?>펼쳐냈습니다. 가족 이야기만 나오면 저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었던 원인의 큰 자리를 형님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넘어서는 자식들이 많지 않다고 하지만 저희 형님에게는 그것이 예외조항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더럽고 부정적인 삶의 내용들, 그 모든 기록을 형님은 거의 모두 갱신했습니다. 아버지 역시 인정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니가 이겼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형님은 가족들에게 경멸적인 존재요 수치스러움의 대명사였습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였고요. 한마디로 형님이란 존재가 목사의 길을 가는 저에게는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서울까지 와서 목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형님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거두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라는 책 때문이었습니다.

이 책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대신하여 동생의 학비 마련을 위해 우발적인 강도 살인을 저지른 형과 그런 형을 둔 동생의 이야기입니다. 강도 살인을 저지른 심성이 착한 형으로 인해 동생은 본의 아닌 엄청난 시련을 세상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집안에 강도를 두었다는 세상의 부정적인 시선은 그로 하여금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회사에서도 해고를 당하고, 사랑도 포기해야 하고, 가수로서의 타고난 재능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 몰립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은 오직 한 가지의 이유로 그는 형님에게 마지막 편지를 올립니다. “출소하더라도 절대로 저를 찾지 말아주십시오. 형님과 저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이 난 것입니다.”

이 편지 한통에 형님은 엄청난 충격을 받습니다. 그 충격이란 동생으로 부터의 절연선언 때문이 아닙니다. “이렇게 오랜 시간동안 나라고 하는 존재가 이 감옥 속에서 조차 내 동생에 게 저런 고통을 안겨주었다니.. 그런 저 자신이 너무나 혐오스럽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쩌면 나라는 인간의 멸시어린 시선으로 인해 형님이 서러움의 눈물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생의 목회 길에 자신이란 존재가 방해거리가 되고 있다는 생각에 자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 저의 태도와 시선만 차가움과 멸시로 채워져 있었지 형님은 언제나 저에게 따뜻하셨습니다. 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도 항상 너그러우셨고요.

별것도 아닌 ‘목사 동생’이 형님에게는 늘 자랑의 원천이었습니다. 한번은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 11시 정도였는데 형님으로부터 전화가 온 것입니다. “여보세요. 관성아. 전화 바꿔주께 통화 좀 해봐라. 내가 돌겠다.”

다짜고짜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나는 무성이 형 친군데요. 그 뭐 시기. 동생 분 진짜 목사 맞아요?” “예. 침례교 목사 맞습니다.” “와 ㅅ ㅂ 진짜네. 대박이다.”

형님께서 친구 분들과 대화중에 “내 동생 목사다”고 자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의 꼴을 보자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내기를 걸고 저에게 전화를 한 것입니다. 제가 가진 형님을 향한 태도와 얼마나 상반되어져 있습니까? 저는 참 나쁜 인간입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말씀이 정확한 것인지 모릅니다. “성품은 니보다 니 형이 훨씬 착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너는 독종이고” 마음이 약해서 친구들과의 인연을 정리하지 못하는 형님을 바라보면서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던 말씀이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형님 인생의 비참함은 형님 자신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든지 이해되어져야만 하는 삶인데, 원인과 과정은 고려하지 않고 삶의 결과만을 가지고 형님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동생의 ‘까칠함’으로 인해 남몰래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고 지내시는 것은 아닌지…….서울에 올라오지 못하시는 이유도 자기 같은 형으로 인해 동생이 목회에 어려움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때문은 아닌지……. 참 괴롭고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제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 수 있었던 것도 전부 형님의 덕택입니다. 손버릇이 고약했던 6학년 시절, 슈퍼마켓에서 초콜릿을 훔치다가 들켜서 경찰로 연행된 적이 있습니다.

담임선생님, 어머니, 형님 총출동을 하셨지요. ‘어리다’는 이유로 훈방되어 집으로 돌아온 저는 형님과 함께 동네 우물가로 갔습니다. “야 이새꺄 옷 전부 벗어” 발가벗은 저에게 물을 몇 차례 부었습니다.

그런 다음 준비한 전기 줄로 사정없이 두들겨 팼습니다. “샤아아아 악 착” 전기 줄이 저의 몸에 감기는 소리를 묘사한 것입니다. 온 몸에 피 멍이 들었고, 극도의 공포감에 저는 사로잡혔습니다. “너 이 새끼. 내일부터 동네 교회 다녀. 빠지면 죽는다.” 자기는 교회를 다니지도 않으면서 동생은 착한 사람 되라고 교회를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침례교회와 저의 인연이 되었고, 그 길로 지금까지 교회 한번 빠지지 않고 이렇게 살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은 박살이 나더라도 동생만은 지키겠다는 형님의 배려로 저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동생의 되먹지 못한 건방짐과는 상관없이 늘 양보하고, 손해보고, 배려하는 형님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아침입니다. 형님의 남은 인생이 더 이상 아픔과 고단함으로 채워지지 않기를 소망해봅니다.

“형님. 동생이 목산데 교회 나가야죠?” “그렇지 않아도 다니기 시작했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형님 미안하고 고마워요” “네가 목사 됐다고 내가 얼마나 자랑하고 다니는지 아냐? 고향 진하<간절곶 바로 옆 바닷가>사람들 다들 깜짝 놀란다. 니가 우리 집안 자랑이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 각 사람의 인생은 직책과 직위에 따라 평가받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가 된 사실 자체가 형님보다 나은 인생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이 진리의 말씀이 우리 형제의 삶에 역사되어지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괴롭고 고단하고 외롭고 눈물 났던 형님의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형님의 남은 인생에 화사한 봄날이 찾아오기를 기대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는 기쁨의 시간들이 고통당했던 시간과 세월만큼 형님의 삶에 채워지기를 눈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형님.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너무 많이 고맙습니다. 그리고 형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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