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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것을 온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7

김관성 | 기사입력 2012/06/12 [07:17]

사소한 것을 온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7

김관성 | 입력 : 2012/06/12 [07:17]

기독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핍박’이 임했을 때 오히려 신앙의 부흥이 나타나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총칼로 위협하고 겁주는 방식으로는 절대로 기독교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모택동이 활약했던 중국의 공산혁명 시절의 상황을 보면 그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총과 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앙의 부흥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

믿음의 불길이 더 뜨겁게 타오름과 동시에 지하교회가 엄청난 속도로 번져나갔던 것을 문헌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C.S 루이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에도 인상적인 이야기 등장합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노련하고 경험이 풍부한 삼촌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그의 조카인 초보 마귀 웜우드를 코치 하는 내용입니다.

윔우드는 핍박을 통해서 교회를 무너뜨려 보겠다고 자신감 넘치게 이야기 합니다. 그 때 고참 마귀 스크루테이프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게 하면 신자들은 더 열심히 기도한다”

참으로 예리한 시각입니다. 환난과 핍박과 같은 커다란 사건으로는 결코 교회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단결을 가져올 뿐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일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아주 시시껄렁한 것으로 교회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전세계 사람들의 사망원인의 첫 번째 자리에 어떤 질병이 놓여있는지 아십니까? 뇌졸증, 심장병, 암, 에이즈. 이런 것이 아닙니다. 감기로 인한 폐렴 합병증이 넘버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집니다. 무겁고 중한 사건으로 교회가 와해되지 않습니다. “한번 째려 본것” “사소한 뒷담화 한방” “따뜻함이 사라진 말투” “목사님과 커피마시러 갈 때 자기는 빼먹고 간 것” 이런 것으로 교회가 갈라지고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삶의 영역에서 제대로 된 신자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정으로 강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분과 큰 형태로서 기독교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는 승리를 거두고 있습니다. 대규모의 군중집회를 한다거나, 이권이 걸린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의 입장을 집단적으로 피력하는 일에는 아주 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주의 교회를 참된 의미에서 지탱해주는 친절함과 따뜻함, 배려, 긍휼과 연민을 이웃들에게 보여주는 일에는 너무 많이 실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가장 큰 문제들입니다.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시 78:70)

다윗은 거창하고 대단한 업적을 이루어 내고, 큰 환난과 핍박을 이겨낸 일들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천한 '양치기'로서의 자리를 믿음으로 감당하다가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를 내게 주옵소서. 아니면 내게 죽음을 주옵소서” 존 낙스의 고백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이런 종류의 고백과 헌신에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주님을 위해 인생을 드리고 헌신하는 일이 사생결단의 각오와 목숨을 필요로 하는 비장한 액션으로만 표현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존 낙스와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고 있고, 싸우고 감당해야할 신앙의 내용도 전혀 다릅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에게는 사실 죽을 일이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로 헌신해야 할 인생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직장과 가정을 거룩한 믿음의 전당으로 수호하고 지키는 자리로 부름을 받는 자들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잔소리와 짜증을 따뜻함으로 받아내는 일은 죽는 것보다 쉽지 않습니다. 남편의 발광을 인자함과 여유로운 이해로 수납하는 일은 순교하는 일만큼 힘든 것입니다. 순교는 일순간이지만 삶은 죽을 때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자 각자에게 맡겨진 신앙의 과제와 사명은 ‘그 누구는 더 어렵고 그 누구는 더 쉽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은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가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 하는 것들입니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반대하면서 자신의 목숨을 드렸던 목사님들의 헌신을 가볍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살아서 그 혹독한 시기를 38년간 살아내었던 분들의 수고는 어떤 의미에서 더 귀한 것입니다.

마라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의 사역의 이야기가 영혼에 큰 울림을 줍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서 할머니 한 분이 교회에 오셨답니다.

글도 모르시고, 노래에 대한 감각도 전혀 없는 이 할머니 한분만을 붙잡고 6개월 동안 가르치고 또 가르쳐서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이 찬송 한곡을 익히게 하셨답니다. 얼마나 귀한 믿음의 수고입니까? 고독과 외로움이 주는 고통을 이겨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서있는 자리의 외로움과 열매 없는 황량한 현실로 인해서 울지마십시오.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와 같은 생각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장악하기 시작할 때를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이 세상 그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광대하심의 한 부분을 가장 멋지게 표현하고, 감당하고 있는 존귀한 인생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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