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모닝런던을 시작페이지로
BBC CBeebieslive LearningEnglish BBC school BBC local Congestion HSBC Daum Naver Google 핫메일 다국어성경 Amazon Audio Treasure 성경찾기 유투브 Eday 영국벼룩시장

노루 잡은 막대기로 3년 우려먹는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6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2/06/07 [07:20]

노루 잡은 막대기로 3년 우려먹는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6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2/06/07 [07:20]
<과거를 그만 우려먹으십시오>

“노루 잡은 막대기로 3년 우려먹는다.” 참 많이 들어본 표현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양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쏟아 부었던 봉사와 헌신을 가지고 지금 현재의 신앙의 진정성을 증명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내가 우리 예배당 지을 때 말이야” “내가 목사님 모셔 올 때 말이야” “내가 학생회 회장 할 때 말이야” “내가 성가대 지휘 할 때는 말이야” 계속해서 이런 종류의 타령을 부릅니다.
...
이것은 분명히 귀한 수고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펼쳐 보인 과거의 충성과 봉사가 그 사람의 현재의 신앙을 담보해 주지 못합니다.

지난날의 신앙적 이력이 아무리 화려하다고 해도 그것 자체가 그 사람의 구원을 결코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믿음이 좋아 보였던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경주에서 벗어나 세상으로 떠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었고, 주님을 위한 충성과 헌신의 표로서 엄청난 헌금을 드렸고, 목사님에게 잘하는 것이 주님을 잘 섬기는 길이라 생각하면서 주의 종들을 지극 정성으로 섬겼던 자들이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긴다는 자부심 아래 온갖 수고와 애씀을 마다하지 않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방언을 하던 자들도 있었고, 선교단에 몸을 담아 눈물로 찬양을 드리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구원의 확신이 있느냐?’고 질문했을 때 ‘아멘’으로 화답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교리를 분명하게 고백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리스도를 등지고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결국 그들이 펼쳐 보였던 모든 신앙행위는 자기의 감정과 잘못된 상상력에 근거한 단순한 종교성의 표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세대의 교회에서 경험되어지는 일들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의 <신앙과 정서>에도 유사한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그렇게 화려한 부흥의 역사들 속에도 거짓 신앙과 거짓 은혜가 수도 없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합니다. 그는 이 책에서 아무리 뜨겁게 기도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헌신을 다짐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가짜일수 있다는 예리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에드워드는 당시의 열광적인 부흥의 역사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고 그것의 분위기를 확산 시키려는 흐름에 일정부분 제동을 걸고 나선 것입니다.

그는 거짓된 신앙의 정서를 참된 은혜의 역사라고 간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주장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성경적인 신앙의 정서를 설명합니다. 지금 현재를 믿음으로 살지 않는 모든 종류의 신앙적 헌신과 체험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확신도 마찬가집니다. 구원 받았다는 주관적 확신도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에드워드의 입장에서 본다면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함께 신앙의 진정성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바로 이 순간을 믿음으로 살고 있는 명백한 삶의 모습, 그것만이 구원 받은 자라는 사실을 담보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를 믿음으로 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베들레헴 침례교회의 존 파이퍼 목사님의 견해를 소개할까 합니다. 그는 4가지를 부정적인 형식으로 제시합니다.

1. 기도에 대한 열정-삶에서 기도하는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기도하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 신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무관심 한 사람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 말씀, 즉 성경에 대한 목마름-거듭난 신자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표징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같은 믿음 안에 있는 신자들을 향한 사랑-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서 믿음 안에 있는 형제와 자매를 전심으로 사랑하는 자리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4. 거룩하게 살기위한 몸부림-2번이 지식의 측면이라면 이것은 그 말씀의 내용대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가는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이 식어가는 구체적인 모습을 그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들이 고착화 되면서 종국에는 믿음의 경주를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밍아웃을 선언합니다. “사실은 신자가 아니었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자아가 요구하는 육체적, 정신적 만족을 극대화 시키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가르치고 부추기는 시대입니다.

거짓 신앙인들은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기관이나 종교가 존재한다면 얼마든지 기독교 신앙도 포기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먼저 달려갔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로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좋은 교회 분위기속에서 그냥 교회를 다니고 있는 사람이 아닌지 여러분의 영혼을 점검하셔야 합니다.

옛날의 영광스러운 충성과 헌신이 현재의 충성과 헌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과거의 종교적 유희는 단순한 추억일 뿐입니다.

“야 우리 학생회 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학생회 임원이었지만 지금은 불교에 깊이 몸담고 있는 저의 친구의 고백입니다.

지나간 영광의 시간에 너무 오랜 시간을 머물러 있거나 지나가 버린 눈물의 시간에 너무 오랫동안 지배를 받으면,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과거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으며, 지나간 것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삶의 교훈뿐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이 기사에 대한 독자의견 의견쓰기 전체의견보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 목
내 용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