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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하여 죽음을 강요할 수 있는 슬픈 현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4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2/05/28 [07:19]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하여 죽음을 강요할 수 있는 슬픈 현실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4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2/05/28 [07:19]
미국 흑인 여성 작가 토니 모리슨의<Beloved>는 저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었고, 또한 깨닫게 해준 귀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토니 모리슨은 퓰리쳐 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작품성도 인정해줄만한 책입니다.
 
이 책은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붙잡혀 온 흑인들의 처참한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흑인 노예들의 삶은 인간이 아니라 물건이나 짐승과 같이 다루어집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죽을 수조차 없는 운명이고, 자기의 감정조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억압구조 속에 놓이게 됩니다.

백인들은 온갖 구타와 폭력으로 흑인들을 다스리면서도 자신들의 성적인 욕구를 여자 노예들을 통해서 마음껏 채웁니다. 흑인 노예들은 비참한 폭력적 강간을 당함으로 자기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자리로 내 몰립니다.

심지어 그들의<흑인>젖을 짜다가 자신들의 아이<백인>들에게 먹이는 장면도 등장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을 데리고 탈출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하루도 못된 시간에 붙잡힐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아이들의 운명이 본인이 경험해왔던 삶을 동일하게 반복할 것이 너무나 명확하다는 판단아래 톱을 가지고 아이들을 베어버립니다. 이 책에서 가장 눈물겨운 장면이죠. 그 장면을 있는 그대로 한번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톱니를 작은 턱 아래서 끌어당기기 위해 얼마나 독한 마음을 먹어야 했는지, 기름처럼 아기의 피가 펌프처럼 솟아나오는 느낌이 어땠는지, 아기 머리가 제자리에 붙어 있게 하기 위해 손으로 받치고 있던 심정이 어떠했는지, 통통하고 생명이 붙어 달콤하던 그 사랑하는 모을 뒤흔들던 죽음의 경련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기 위해 구애를 꼭 껴안고 있던 마음이 어땠는지 그걸 모른 채 빌러비드가 떠나버릴까봐 무서워했다.

백인들이 그 누구한테 한 짓을 떠올려 봐도 그 무엇보다 더 끔찍한 일이라는 걸. 그냥 괴롭히고 죽이고 사지를 절단한 게 아니라 더럽혔다. 너무나 끔찍하게 더렵혀져서 다시는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했다. 자기 자식들만은 결코 그런 짓을 당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한 짓은 바로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거라고 믿게 하기 위해 엄마는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이런 현실들은 과거의 현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요? 2012년 2월로 기억합니다. 어느 40대 장애인 형제의 슬픈 동반자살 사건이 신문의 한 모퉁이에 등장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장애인 형제는 서로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정확하게 묘사하자면 ‘서로 의지하고 살았다’는 표현 보다는 정신지체 3급인 형이 정신지체 1급인 동생을 지키고, 보살피며 살았다는 표현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들 형제는 매월 지원받는 60만원으로 영구임대아파트에 살면서 밝게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고용의 불안정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고,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형은 생활고로 인해 선택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혼자 남겨지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동생과 함께 죽음이라는 카드를 뽑아들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는 사실을 바탕으로 쓰인 흑인노예의 이야기와 우리시대의 현실의 이야기인 장애인 형제의 동반자살 사건이 오버랩 되어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비정함이 너무나 무섭게 다가왔습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향하여 죽음을 강요할 수 있는 것이구나!” “혹시 내 삶이 존재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피눈물 나는 희생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는가!” 이런 종류의 생각들이 계속해서 저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한 시대를 함께 살도록 허락하신 고통과 절망 속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지키고, 돌보고, 살아갈 용기를 제공해주는 것이 교회의 제사장적 사명이 아닐까요? 더 나아가 구조적으로 강자 중심의 일방적 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 교회가 감당해야할 역할이 아닐까요?
 
의식하지도 못한 체 우리는 약자들을 억압하는 구조 악을 만들어내고, 유지보존하고, 강화하는 자리에 동참하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의 모습을 점검해야할 시기입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선지자들은 사회적 약자<고아, 과부, 경제적 빈곤층>들을 억압하는 구조적인 사회악을 향하여 강도 높은 비판을 선포하는 것을 봅니다. 합법적 도둑질을 마음 편하게 감행하는 자들을 향한 타협 없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선지자들은 가옥에 가옥을 더하고 전토에 전토를 더하는 자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아낌없이 충족하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의 최소한의 소유를 강탈하는 자들을 향해 담대하게 “화 있을진저!”를 외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약자들을 죽음의 자리로 몰아가고 있는 이 사회의 구조 악에 대해 선지자적 자세로 비판을 가해야하며, 고통당하는 이들을 향한 실제적인 섬김과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사회가 구조적으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 생명의 존엄함을 위협한다면, 주님의 몸된 교회는 그 구조는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어진 것이라고 반드시 외쳐야 합니다. 개인 구원에만 함몰되어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창조하신 이 세상의 구조적인 사회악에 대해 침묵한다면 복음과 교회의 존재이유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에 보면 최 부잣집이 그 명맥을 오랫동안 이어왔던 비결을 소개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원리들 중에 몇 가지가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사방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재산을 만석이상 모으지 마라”
“흉년에는 남의 논과 밭을 매입하지 말라”
 
사람을 배려하는 부자의 절제와 넓은 아량의 모습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진 각 지역의 사방 백리 안에 굶어 죽거나, 억울해서 죽거나, 꿈이 좌절되어 죽거나, 아무리 몸부림 쳐봐도 희망이 없음으로 인해 죽거나 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을 꿈꾼다면 철이 없는 비전을 소유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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