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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정신과의 싸움- 유물론, 실증주의, 공리주의를 조심하라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3

김관성 | 기사입력 2012/05/25 [06:53]

세상 정신과의 싸움- 유물론, 실증주의, 공리주의를 조심하라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3

김관성 | 입력 : 2012/05/25 [06:53]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 인간들의 관심이 신에게서 인간으로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집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녔던 ‘계시 의존적 사고’로부터 인간의 이성에 초점을 맞춘 세상으로 그 모습을 탈바꿈합니다. 신 중심적 사고는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죠. 이런 변화들이 종국적으로 나아갔던 방향이 무엇이었을까요?
 
결국 근대 이후의 사회는 존재론적 측면에서 보자면 유물론이 그 핵심적 자리를 꿰차게 됩니다. 유물론은 물질적인 것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입장 차이가 조금씩 나타나긴 하지만 그 본질적 의미는 물질적인 것이 진정한 것이고 나머지는 부스러기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식론에서는 실증주의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실증주의는 형이상학적 추론을 버리고 인간 오성의 감각 경험과 철저한 검증에 기반을 둔 것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보는 일종의 과학철학입니다. 한마디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사상적 흐름과 함께 인간 삶의 가치와 도덕적 영역을 다루는 윤리학의 자리에서 인간들의 삶을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사상은 공리주의가 차지합니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이기적 쾌락과 사회 전체의 행복을 조화시키려는 사상입니다.

공리주의의 정의는 참 좋습니다. 그러나 공리주의 중심적 근간은 무엇입니까? 결국 개인에게든지 집단에게든지 이익과 가치를 가져다주는 것만이 좋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유물론, 실증주의, 공리주의는 중세의 다소 억압적 분위기와 가치에 대항하여 ‘인간해방’을 기치로 걸고 등장했던 사상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세 가지의 사상은 다시금 인간 실존을 허망한 것들 속에 가두어 버리는 교조적 도구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물질적인 것에 목숨을 거는 세상<유물론>,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로 간주되는 세상<실증주의>, 이익의 극대화만 외치는 세상<공리주의>,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자화상이며 동시에 이런 가치관이 교도관이 된 감옥 속에서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 됩니다.


우리가 신앙적 영역에서 정통 교리에 대해 시비를 걸거나 공격하는 자들을 ‘이단’ 이라고 합니다. 무서운 것은 이 세 가지의 가치들이 이 세상살이에서의 교리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리화 되어버린 이러한 가치관에 이의 제기를 행함과 동시에 특별한 인간으로 낙인이 찍히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시비를 걸수도 없고 저항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암묵적 합의가 너와 나 사이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터치하면 죽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협박이 존재합니다.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인간들은 이 세 가지의 가치에 함몰되어져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자들의 삶은 이러한 사상을 당연시 하고, 이것 이외에는 다른 종류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의식을 심어주는 그 흐름에 대항하여 싸워야합니다.


독일 튀빙엔 대학의 신약신학자 게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교수가 쓴<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공동체의 정체성을 묘사할 때 흥미로운 표현을 하나 등장시킵니다. ‘대조사회’라는 표현입니다.
 
‘대조사회’ 라는 표현 속에는 이중적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부정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과 대척해 있는 다른 세상”임을 말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에서는 “세상 안에 존재하는 다른 가치를 지닌 사회” 라는 개념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조사회’ 로서의 그리스도인의 삶은 물질적인 것의 소중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의 우상화에 저항해야하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보이지 않는 세상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삶으로 증명해야 하며, 자기 자신의 이익보다는 불공평한 구조적 악으로 인해 최소한의 삶의 이익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긍휼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막 지난 속사도 시대 때의 이야기입니다. 형제가 먹을 양식이 없어 굶고 있는 가련한 모습을 다른 믿음의 형제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1주일 뒤에 나타나 자신이 발견한 그 형제에게 1주일 분량의 양식을 전달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구제가 아니었습니다. 양식을 건넨 믿음의 형제는 구제할 양식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형제를 위해 1주일을 금식하면서 그 양식을 모은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금식을 통해 마련한 양식을 형제를 위해 내어놓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스토리가 실제하며 가능한 것은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이 그 때 당시에는 개념화 되어있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유물론, 실증주의,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물질적인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다른 이를 위해 기꺼이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 눈에 보이는 이 세상적인 것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객관적 실체로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보는 영적 시야가 있기에 소중한 양식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고, 나의 이익보다는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할 수 있었던 것은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의 윤리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살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향은 이곳이 아님을 늘 기억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우리도 모른 체 이 세상적 가치관과 세계관의 강에 빠져서 익사해 가고 있지 않는지 부단히 우리 자신들을 점검해야 할 시기입니다. 다른 옷을 입고있지만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상인 <유물론, 실증주의, 공리주의>를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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