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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 눈에 비친 기독교인들의 이미지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

김관성 | 기사입력 2012/05/22 [17:36]

세상 사람들 눈에 비친 기독교인들의 이미지

김관성 목사의 광야의 외침

김관성 | 입력 : 2012/05/22 [17:36]

세상 사람들의 눈에 비친 기독교의 이미지는 무엇일까요? “얄미운 팔색조들” 저는 이것이 많은 것들 중에서 가장 근사치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환경이 펼쳐져도 재빠르게 변하고 적응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시키는 존재들로 우리의 모습들이 인식되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 순교자중의 한 사람인 ‘카즈뭉그’의 외침이 우리의 영혼에 큰 울림을 던집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교회의 상징들이 되어왔던 것은 사자, 어린양, 비둘기, 물고기였지 카멜레온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기독교 신앙과 삶은 때로는 핍박과 조롱받는 현실로 내 몰리긴 했지만 비열함과 비루함의 대명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세상의 비열함과 소망 없음을 비판하면서 세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세상의 문화에 적응하여 자신의 존재기반을 이 세상 안에서 공고하게 세워가는 곳. 바로 그곳이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세상은 더 이상 교회를 향한 막연한 경외와 신비의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개독교 놈들’ 이 표현 속에는 주의 교회를 향한 세상의 정서가 녹아있습니다.
“잔머리, 야비함, 비열함, 안일함, 피상성, 계산적임, 말 많음, 넘치는 자신감, 시끄러움” 신자가 물에 빠지더라도 입만은 둥둥 떠 있을 것이라는 그런 정서가 저들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한번 들어볼까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란 매우 보수수적이고, 자신들의 사고의 틀에 갇혀 있고, 항상 화가 나있고, 공격적이고, 비논리적이고, 사람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을 개종시키려고, 자신과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과는 평화롭게 공존하려는 법이 없지요."
데이비드 키네먼과 게이브 라이언이 지은 책 “나쁜 그리스도인”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세상의 요구대로 주의 교회의 모습을 형성해 갈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저들로부터 받는 평가가 윤리적, 도덕적인 내용의 모자람 때문이라고 하는 것은 슬픈 현실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전복하자고 외치면서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은 세상 보다 더 세속화 되어버린 이 비극적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기독교는 주님의 마음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마케팅되고 있으며 공포를 팔아먹고 사는 미신과 다를 바 없는 그저 그런 종교로 평가되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채색되어진 부정적 이미지로 인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본래의 복된 모습과 내용이 제시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그만하세요. 교회 이야기는 그만 듣고 싶으니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인생이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실존을 넘어 얼굴에 가득한 미소와 마음의 넉넉함을 담아 나누는 삶을 펼쳐 보일 때 세상은 생각을 시작합니다. “무엇이 저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의 고통과 눈물을 넘어서게 하는 것일까?”
 
자신의 업적과 성취를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세상적인 성공을 이룬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종교 쇼’의 차원이 아닌 세포에 명확히 새겨진 삶의 가치관으로서 낮아짐과 섬김의 모습을 보일 때 세상은 의문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기독교 안에 무슨 힘이 있어 사람을 저런 식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부분을 믿음으로 감당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과 너무나 닮아버린 교회를 향한 식상함이 짜증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경험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함과 따뜻함이 담긴 일상의 삶으로 저들의 영혼에 잔잔한 생각의 파도를 만들어 내는 것은 불가능한 꿈일까요?

오늘 우리가 표방하는 신앙의 모습이 지나치게 경직되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신앙을 일상의 평범한 삶을 짊어지는 것으로 보기보다는 사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을 증명하는 수단을 종교적인 영역으로만 내몰고 있는 것입니다. “죽기 살기의 기도” “목숨 건 교회 헌신” “절박한 마음으로 선교의 현장으로 나아가자” 이러한 구호 속에 진정성이 담겨져 있고 그 동기도 순수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신앙적 영역에 국한되거나 그것을 주된 것으로 삼지 않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펼쳐내는,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삶의 모습이 우리 신앙의 실질적 내용되어야 합니다.

라브리 공동체를 세운 프란시스 쉐프라는 기독교 사상가가 있습니다. 이 사람의 사상을 살펴보면 귀하고 복된 점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깊이 있게 관찰해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이 그의 사고의 한 모퉁이에 자리 잡혀 있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의 자세와 비슷한 ‘그 무엇’이 배어져 있는 것이지요. 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전적인 수용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쉐퍼와 같은 인식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다.” “나는 구원받았고 너는 못 받았다.” “내가 너보다는 낫다.” 이런 식의 의식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의식중에 깔려있습니다.

인생과 삶에 대해서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마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기도는 분명히 “벌레만도 못한 우리들에게…….” 라고 산파조의 목소리로 올리면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삶의 태도는 굉장히 거만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었고 이미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부정적인 적대감은 믿지 않는 자들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받는다고 느끼는 그 적대감이 반영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 이 메시지는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를 담고 있는 외침입니다. 이 메시지 안에는 구원의 배타성이 분명히 표현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외침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 메시지의 진정성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압도적인 헌신과 남다른 희생으로 증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배타성만이 강조되어지고 그것을 받쳐 줄 삶의 내용이 없는 현실이 오늘의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시끄러워 죽겠어요.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이것이 우리의 성적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독교 신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복음을 개인적인 영역에 국한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작고한 찰스 콜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눈으로 인생과 현실에 속한 모든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얼마나 귀한 가르침 입니까?
기독교는 세계관이나 체계이며 삶의 방식임을 잊지 마십시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복음의 내용을 평범한 일상의 삶으로 살아내는 일에 성공할 수 있기를 빕니다. 복음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꼴’이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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