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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마이클 호튼

김관성 | 기사입력 2012/05/18 [07:33]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마이클 호튼

김관성 | 입력 : 2012/05/18 [07:33]

마이클 호튼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두 종류의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 잠깐 등장하는 두 소설이 있다. 조지오웰의 <1984>과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다. 너무나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목이 말랐다. 감질 난다고나 할까! 짧지만 강렬했기 때문에 조금 더 살펴보고 싶었다.

1. 조지오웰의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제국 앞에 놓인 개인이 저항하다가 어떻게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품의 주요 배경이 되는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단적 모습을 띠고 있는 나라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2.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사람들이 포드 기원이라는 연도를 통해 시간을 계산하는 어느 미래, 사람들은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낸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 지를 사회에서 다 결정하는 것이다. 그럼 반항은 없겠냐고? 없다. 놀랍게도 없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가장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모든 것을 세뇌 받고 교육받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일을 하고, 자신의 계급 안에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소마'라는 약물이 있는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우울하면 그 약을 먹는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다시 '행복'해진다.  

인간다움을 가꾸거나 도덕성을 내재화 하는 연습은 더 이상 필요 없다. 그냥 ‘소마’만 복용하면 끝이다. 행복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안에 내재되어진 지향성이란 조지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 전제주의 세상은 생래적으로 거부함과 동시에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지는 유토피아의 세상으로 그 방향타를 옮기게 되어있다. 자유와 안락을 향한 본능이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과연 인간들의 사상과 생각 속에서 최선으로 보이는 조지오웰의 1984년의 전제주의를 넘어선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의 사회가 진정한 유토피아 일까?  

인간들은 자신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만들어 내고자 하는 또 다른 세상 안에 자신들이 미리 내다 보지 못하는 다른 종류의 족쇄와 굴레가 존재하고 생성된다는 사실을 모른다.

“우리는 정보가 통제되어 진실이 강제적으로 가려지는 전제주의적 통제국가를 종식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냈다고 자랑하는 그 <멋진 신세계>는 정보가 흘러 넘쳐서 진실이 왜곡되어져 버리는 사회임을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국가주의의 무시무시한 속박에서 드디어 벗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확정적으로 ‘대중문화’ 라고 하는 거대한 공룡에게 사로잡혀 일시적 쾌락, 의미 없는 감정적 충족, 하찮은 것들<스포츠, 연애계소식 등>의 노예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자신들의 다음단계의 삶의 형태임을 모른다. 그것이 인간의 역사였다.

오고 오는 모든 세대의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고 있는 인간 문명이란 것이 이 정도의 허무함의 연속이라면 인생들은 이제 고개 숙이고 외쳐야 한다. “하나님!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번만 더. 베이비 원 모어 타임” 자신들의 염치없는 뻔뻔함을 계속해서 드러낸다.

인간들은 브레이커 없는 폭주 기관차처럼 계속해서 달린다. 하나님 없이도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인간 안에 존재하는 승부욕이란 존재의 사멸이 이루어지는 그 시점까지 항복을 모른다.

왜냐면? 그들은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하면 역사의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한 마음으로 노력하면 ‘사람 사는 세상’이 올 것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은 ‘제자리 뛰기’만 계속될 뿐이다. 줄넘기만 횟수가 거듭되면 될수록 피곤만 쌓인다. 

인간들이 붙잡고자 하는 ‘행복’은 실체가 없는 허상이다. 결국 자기 꾀에 넘어가버린 인간들의 처참한 비명만이 온 세상에 흘러넘친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밖에 없음을 그 누구도 모르는 결과다. 

‘밥상과 평안’의 올무에 걸려 있는 그리스도가 없는 인류는 1984년의 세계를 넘어 <멋진 신세계>를 만들어 보지만 희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가련한 운명의 소유자들이다. 항복한 자가 누리는 자유와 기쁨을 어찌 알겠는가! 그들에겐 비굴해 보일뿐이다. 영적 사시들이기 때문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요한계시록 3장 17절-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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