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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용(知,仁,勇)과 삼위일체(三位一體)

상고금문으로 해석한 대학과 중용 중 중용 3편 중에서....

박필립 | 기사입력 2017/06/16 [17:15]

지인용(知,仁,勇)과 삼위일체(三位一體)

상고금문으로 해석한 대학과 중용 중 중용 3편 중에서....

박필립 | 입력 : 2017/06/16 [17:15]

무엇을 지(知)라 하는가

 

子曰: 好學近乎知, 力行近乎仁, 知恥近乎勇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배움을 좋아하는것은 지에 가깝고, 힘써 행하는 것은 인에 가깝고,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용에 가까운 것이다.]

신학이 인문학으로 변경되는 대목이다. 공자의 해석과 달리, 고대 한자는 그 본 뜻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배운다는 것은 인간세상의 것을 배움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설계도다. 

 

신과 사람과 하늘과 땅과 해와 구름을 그린 글자▲     © GoodMorningLonDon


성경에서의 지(知) 또한 하나님 말씀을 입술로 되세기는 것이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Pray also for me, that whenever I open my mouth, words may be given me so that I will fearlessly make known the mystery of the gospel,[NIV]

에베소서 (Ephesians)   6:19

 

영어 해석을 직역하면 '내가 입을 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주어져 나로하여금 담대히 하늘나라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도록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기 바랍니다.'가 되겠다.

 

단지 음식물을 씹어 넘기는 도구(口)에 지나지 않았던 인간의 입이 하늘의 계획을 선포하는 지극히 소중한 역할로 변모하는 대목이다. 

 

모든 죄악의 발생지인 인간의 입술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귀한 입술로 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알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세상 번잡한 일에 사사건건 매달려 악취를 풍겨내던 입술이 간혹 신의 명령에 따라 가끔씩 고상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엄자리같은 입술이 열릴 때마다  눈이 멀고 귀가 멀게할 정도로 홀딱 반하는 진리의 향기를 발하는 입술로 태어나는 것이 지(知), 곧 신을 아는 것이다. 신을 안다는 것은 말씀을 안다는 것이다. 말씀을 안다는 것은 입술로 읊조리는 것이다. 

지(知)의 고대글자 또한 신과 사람과 하늘과 땅과 해와 구름 등을 그려내고 있다. '누가 세상을 창조했는지 입술로 읊조리다.'라는 뜻을 그린 것이다.

 

어질 인(仁)은 사랑의 실현이다.

인(仁)은 두 사람의 심장이 통하는 것을 그린 글자이다. 지금 말로 사랑이다.

 

 

두 개의 심장이 연결된 것을 그린 글자▲     © GoodMorningLonDon

 

하나님의 설계도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설계도에 따른 실체가 드러나야 한다. 말씀이라는 설계도가 우리 눈 앞에 펼쳐지기 전까지는 설계도에 지나지 않는다. 설계도에 따른 구체화, 건설작업이 필수이다. 공자는 그것을 힘써 행한다하여 인(仁)이라 하였다 [力行近乎仁]. 성경에서는 말씀이 예수로 실체화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John 1:14)

  

행한다 함은 사랑이다. 말씀이 구체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은  내 심장과 그대의 심장이 상통하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서 내 죄를 지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사랑이 아니고 처음부터 내 심장과 신, 곧 현현하신 예수의 심장이 연결되어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요한복음 13:34-35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9 

  

 '예수님 사랑합니다.'을 제단 앞에서 목이 쉬어라 외치는 것이 예수의 도를 깨달은 자의 전부가 아니다. 그 열정을 이웃에게 보여주는 것이 예수가 전해준 진정한 사랑이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너희들끼리 치고 박고 해도 다 용서하마. 헐뜯고 시기하고 질투해도 나 예수만 사랑한다고 외치기만 하면 다 천국에 가느니라.'라고 예수는 말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예수님 사랑합니다.'하는 소리가 높으면 높을수록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멀리 하는  것도 바로 이 까닭이다. 성경 어디에도 '나 예수를 사랑하라.'라고 기록돼 있지 않다.

입술로 '예수사랑'을 외치는 사람치고 '그 이웃을 그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사람 보지 못했다.

 

 

용(勇)이란 신과 함께 하는 것

▲     © GoodMorningLonDon

 

개인의 의지로 인간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면벽수련 30년을 했다고 해도 홑겉만 입은 비맞은 젖가슴 봉긋한 황진이가 야심한 시각에 사내에게  뛰어들면 그것을 물리칠 인간 땅 위에 없다.

어느 오후 늦잠자다 일어난 다윗왕이 왕실 옥상에서 내려다보니 어염집 귀수가 목간을 하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하나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던 다윗 또한 그 한 순간에 맛이 가버리게 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날랠 용 혹은 용감할 용의 구성은 쓸용(用)과 입구(口)로 되어있다. 용(用)이라는 글자는  중(中)이라는 글자와 함께 쓰이는 것으로 중은 신이 머무는 장소를 그린 것이다. 따라서 용(用)은 신의 하강, 곧 신내림의 장소이다. 그 곳에 살아있는 인간, 곧 구(口)가 접붙는 것, 내 생명 속으로 신이 내리는 것이 바로 용(勇)이다. 접신을 의미한다. 현대적 용어로 성령이 함께하는 것이 용(勇)이라는 글자이다.

 

공자는 '수치를 아는 것이 용이다.'[知恥近乎勇]라고 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신으로 부터 오며 (性)그 성품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바른 길(道)이라고 하였듯이 치(恥)란 마음(心)에서 나는 소리, 곧 양심을 귀(耳)로 듣는 것이다. 

▲     © GoodMorningLonDon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知), 그 말씀, 하나님의 심장과 내 심장이 서로 연결된, 곧 사랑의 구체화(仁), 그리고 그 말씀이 내 입술에  머무는 것(勇). 이것이 신(말씀)과 말씀의 현현(예수), 그리고 성령이 모두 통하는 삼위일체의 핵심이 될 것이다.

 

 

신의 말씀이 그 입술에서 떠나지 않는가 (知-言,神)

신의 말씀이 실행되고 있는가(仁-예수, 두 심장이 통하는)

신의 말씀이 육신을 지배하고 있는가(勇- 성령, 내 입술에 머무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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