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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상생협회 설립과 활동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6

GoodMorningLonDon | 기사입력 2015/08/18 [04:09]

대·중소기업상생협회 설립과 활동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16

GoodMorningLonDon | 입력 : 2015/08/18 [04:09]

대·중소기업상생협회 설립과 활동

사외이사들의 반란으로 2005년 11월 17일 나의 피와 땀은 물거품이 된 채 난파선 신세로 전락된 후 시도 때도 없는 빚 독촉을 받자 내 영혼과 삶 자체가 급격히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두려움 또한 엄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스스로가 뭔가 미친 듯이 해야 할 일을 찾아야만 될 생각이 절실했다. 그리고 나 개인이 뛰어 넘기에는 너무 큰 벽이 온 사방팔방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각개전투로는 승산이 없겠다는 상황판단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피해 중소기업을 결집시켜서 재벌대기업의 횡포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2005년 초,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주관한 국회 귀빈식당 조찬 토론회에서 나 같은 피해 중소기업의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피해 중소기업을 잘만 결집시키면 사회적으로 좋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들게 되었다. 그 당시 국회에서는 재벌대기업 횡포에 대하여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던 시기였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피해 중소기업을 만나기 시작했고 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심감도 생기고 기업사냥에 대한 충격으로부터 마음도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재벌대기업들의 횡포에 대하여 비난이 일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언론들의 주목 또한 쉽게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협회설립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던 시기에 SBS 뉴스추적 팀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재벌대기업들의 횡포로 도산한 중소기업들의 피눈물 나는 이야기를 담고 우리 사회 도처에 존재하는 벽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고발 프로그램이었다. 특히 검찰청과 공정위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모든 피해 중소기업들 대부분은 ‘사법질서’가 문란해지면서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고통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뉴스추적팀은 내 사건에 대한 관심도 대단했다. 상대가 이 나라 최고의 재벌 삼성이었고 검찰의 부실수사가 촉매제가 되었다. 그리고 IT업계에서 장래가 촉망받는 기업이 허무하게 쓰러졌기에 그들의 관심은 클 수밖에 없었다. 뉴스추적팀은 내가 상생협회를 설립하는 과정과 함께 삼성SDS를 검찰에 고소하게 된 배경과 검찰의 부실수사를 집중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으면서 협회는 발족식까지 성황리에 하게 되었는데, 발족식은 여의도 전경련 회관 앞 도로에서 진행하였다. 이 나라 경제의 상징성인 전경련 회관 앞에서 피해 중소기업의 목소리를 담는 협회의 설립은 당시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2006년 2월 22 일 SBS 뉴스추적에서 ‘거리로 나선 중소기업’ 이라는 주제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집중 보도하였다. 내가 삼성SDS를 고소한 쟁점과 검찰의 부실수사 그리고 기업사냥 관련된 이야기를 담은 사연은 약 20여 분간 방송되었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로 확산되어 협회설립을 알리는 조명탄이 될 수 있었다. 

 

결국, 삼성SDS와의 악연으로 상생협회를 설립하게 되었고 2006년 4월 5일 식목일 날, 협회 사무실 개소식 또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당시에는 손석희 교수의 시선집중 아침 생방송과 KBS 성기영의 경제투데이같은 라디오 방송도 심심치 않게 나갔다. 나는 방송 기회만 있으면 재벌대기업들의 횡포와 이를 봐주고 묵인하는 검찰청과 공정위를 집중적으로 질타하였다. 하루는 모 라디오 생방송에서 평소보다는 수위를 올려서 참여정부 ‘상생협력’ 정책의 허구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다. 방송 후 보도국장이란 분이 전화를 주시면서 등에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는데, 방송 후 청취자들께서 간만에 시원한 방송 듣게 되었다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셔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까지 했다.

 

나는 프레시안 같은 진보 매체에도 간간이 기고를 하면서 정부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 정책은 네온 싸인 불빛아래서 서로를 탐하는 불륜의 ‘쌍쌍파티’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재벌 대기업들에 대한 불공정거래 근절의지는 보이지 않고 현실성 없는 상생협력과 동반성장 정책을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상생협력 보고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피해 중소기업 대표들과 함께 청와대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리고 최대한 많은 보도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국회의원 한 명 이상은 꼭 참여시켰다. 

 

당시 협회는 민변의 송호창 변호사가 법률지원을 담당했고 협회 고문은 천정배 의원, 박영선 의원, 이원영 의원, 임종인 의원, 원희룡 의원, 남경필 의원, 김재경 의원, 고진화 의원, 심상정 의원, 노회찬 의원과 김태동 성균관 대학교 교수, 최병모 전 민변 회장 그리고 김영호 전 산자부 장관께서 큰 힘을 실어 주었다. 협회 고문단의 지명도만 보더라도 당시 상생협회 활동 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상생협회의 고문단 위촉식 모습은 KBS ‘시사기획 쌈’에서  ‘동반성장의 조건’ 이라는 주제로 자세히 보도하기도 했다. 재벌대기업 횡포로 무너지는 중소기업 사례와 대우조선해양과같이 협력업체와 모범적인 상생협력을 비교한 프로로서 나는 KBS 취재 기자와 함께 거제도에 있는 대우조선해양을 방문하기도 했다. KBS는 2004년 12월 12일 <취재파일 4321> 보도를 시작으로 KBS <스페셜>, <연말 국민대토 론회>, <시사투나잇> 등에서 집중보도했다. 협회설립 후에도 <시사기획 쌈>이 심층취재를 하였고, 9시뉴스 <심층취재>와 <추적60분> 등 많은 취재와 방송이 이루어졌다. 

 

나는 이 나라의 불공정거래 실태는 임계상황을 지난지 이미 오래 되었다고 감히 단언한다. 우리가 언론보도를 통해서 접하는 불공정거래 실상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피해를 입어도 ‘사법정의’가 무너진 상황에서 피해 중소기업이 법적인 보호와 구제를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우선 당장 법적대응을 하려해도 변호사 선임비용은 고사하고 인지대 마련조차도 어렵기 때문이다. 재벌대기업들의 불공정거래 횡포전략은 이러하다. 

“우리는 돈도 많고 시간도 많고 빽도 좋으니 어디 한번 해볼테면 해봐라!” 사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피해 중소기업이 대응할게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협회활동 시 언론의 역할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나는 상생협회 회장 활동으로 2006년부터는 정무위와 산자위 국정감사 현장에서 피해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증인과 참고인 역할 또한 하게 되었다. 그렇게 활발한 협회활동으로 국회에서 재벌대기업의 불공정거래 사례나 상생협력, 동반성장을 주제로 토론을 할 때면 나는 1번 타자가 되었다. 나는 피해 중소기업의 사례를 알리고 정부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 정책의 허구성을 알릴 수 있는 자리면 몸이 부서지더라도 마다하지 않고 참석하였다. 모 유명하신 어느 분께선 그런 나를 ‘야생마’ 같다고 했다. 

 

국회에서 불공정거래 근절에 관한 토론회가 있던 날, 공정거래위원회 박상용 사무처장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조 회장님이 협회활동을 열심히 하셔서 그런지 재벌대기업의 불공정문제가 집중적으로 부각 되고 이슈화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재벌들이 굉장히 긴장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는 “재벌대기업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나요?” 라고 반문했더니,

“야, 조성구를 봐라. 한 번 물고 늘어지면 끝까지 간다. 저렇게 죽기 살기로 물고 늘어지면 대책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제가 공정위에 있으면서 느낀 점인데, 상생협회가 설립되고 조 회장님이 열심히 활동하시면서 실제로 불공정 사례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상생협회 활동으로 재벌대기업들이 그토록 눈치를 보고 우리사회에 큰 파장을 끼치게 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다만, 그 억울했던 울분을 어떤 형식이든지 토해 내야만 할 것 같아서 미친 듯이 앞만 보고 달렸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벌대기업들이 상생협회의 활동을 예의주시해서 지켜본 것이고, 내 활동에 긴장을 한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인 결과였다. 그리고 몇몇 언론사에서는 나에게 “경제민주화에 대하여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에도 작지 않은 기여를 했다.”라도 말했다. 나의 상생협회 활동은 2009년 11월 말 까지 4년 동안 ‘야생마’ 처 럼 지칠 줄도 모르게 이어갔다.

 

<조성구의 대 삼성열전 제 17편 '염불에는 정신없고 잿밥에만 몰두했던 정동영,이명박 그리고 그에 기생했던 여야 정치인들'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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